단원 김홍도(1745~1806년 이후)는 주로 남자를 그렸고, 혜원 신윤복(1758~생몰년 미상)은 여인을 많이 그렸다. 단원의 호방한 필치가 남성적이라면 혜원 신윤복의 섬세한 붓질엔 여성적이라는 평이 따른다. 오죽했으면 신윤복을 여장남자로 설정한 드라마가 방송됐을 정도다.
굳이 둘의 풍속화를 나누고 비유하자면 김홍도의 그림은 백자, 신윤복의 그림은 청자 느낌이 아닐까 한다. 투박하게 만든 듯하지만 장인의 노고가 짙은 백자는 손으로 쓰다듬고 싶고 편히 옆에 둘 만하다. 반면 정교한 기법과 화려한 장식으로 한껏 멋을 낸 청자는 보고 또 보고 볼 때마다 감탄하지만 감히 손댈 엄두는 나지 않는다. 세세한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꾸몄지만 적재적소에 가장 적절한 장식으로 탁월한 균형감을 발휘한 덕인지 질리지 않고 볼수록 무궁무진 얘깃거리가 샘솟는 것도 청자가 그렇고, 신윤복의 그림이 그렇다.
섬세한 여성적 붓질에 화려하고 정교한 기법
구도부터 인물·배경 묘사 등 흠잡을 곳 없어
남녀 관계의 연정과 욕망 그린 ‘情의 화가’
풍속화에서 드러난 이들의 시선도 갈린다. 단원의 풍속도는 화가가 그 현장에, 그러니까 씨름판이건 타작하는 논이건 주막과 우물가이건 사람들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직접 눈 맞춰 가며 그린 것 같다. 반면 혜원의 풍속화는 몰래 엿본 것 같은 장면들이다. 서민의 일상과 평범한 삶을 그린 김홍도는 상(常)의 화가요, 남녀 관계의 연정과 욕망을 그린 신윤복은 정(情)의 화가다. 그래서 단원의 그림은 상황이 주를 이루고, 혜원의 그림은 감정이 미묘하다.
일명 ‘혜원전신첩’이라 불리는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은 국보 제135호로 지정돼 있다. 일본으로 유출됐던 것을 간송 전형필이 1930년에 사비를 털어 되찾아 온 소중한 유산이다. 이후 30폭 그림으로 세로 35㎝, 가로 28㎝ 화첩에 새 틀을 짜고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이 발문을 썼다.
신윤복은 화원화가인 부친 신한평(1735~1809)의 뒤를 이어 도화서에 들어갔다. 부전자전이라, 인물 풍속화에 뛰어났고 왕의 초상을 그리는 어진도사(御眞圖寫)에도 여러 번 참여해 그 공으로 벼슬도 받았다. 그러나 장수한 부친이 75세까지 도화서로 출퇴근하니 공식 석상에서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니던 것이 자연스럽게(?) 상류사회 풍류 자제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그림마다 화제(畵題)가 적혀있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새파란 젊은 서방이 여인 꽃 꺾는 ‘소년전홍’
여인네들 멱 감는 모습 훔쳐보는 ‘단오풍정’
보름달 밑 알수없는 관계 세사람 ‘월야밀회’
첫 그림부터 화끈 달아오른다. 술기운에 얼굴이 벌건 젊은 선비가 춘심에 이끌려 아낙에게 수작을 거는 중이다. 여인은 허리를 살짝 틀었지만 싫은 기색은 없고, 생긋 웃는 눈매에 원숙미가 느껴진다. 봄빛이 뜰에 가득하다는 뜻의 ‘춘색만원’이라 적힌 그림이다. 두 번째 그림인 ‘소년전홍’은 소년이 붉은 꽃을 꺾는다는 제목 그대로 새파란 젊은 서방님이 노골적으로 여인의 손을 잡아 끈다. 팔뚝 잡힌 여인의 치마 끝이 왼쪽으로 여민 것은 기생이거나 노비라는 낮은 신분을 보여준다.
이 화첩의 대표작으로는 단옷날 그네 뛰고 머리 감는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이들을 훔쳐보는 두 사내까지 그려넣은 ‘단오풍정’이 꼽힌다. 구도부터 인물의 세부묘사, 배경묘사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수작이다. 그러나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는 밤 풍경이 제맛이다.
눈썹달이 침침하게 내리비친 야밤에 젊은 선비가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과 담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달빛 아래의 연인을 뜻하는 ‘월하정인’이다. 남자는 손에 든 등불로 여인의 길을 비추며 애지중지의 마음을 드러내지만 여자는 새침하기 그지없다. 층층시하에 있는 젊은 선비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집을 빠져나오느라 이렇게 야심하게 만난 것일까. 그림 곁에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고 적혀있다. 하지만 고관대작의 심부름으로 호롱불 들고 여인을 모시러 왔던 사내가 몇 차례 단둘이 밤길을 거닐다 서로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둘만 알지, 누가 알겠나.
달밤에 몰래 만난다는 뜻의 ‘월야밀회’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보름달이 민망할 정도로 담 아래서 포개지듯 진하게 끌어안은 남녀와 꺾어진 담모퉁이 뒤에 숨은 또다른 여인이다. 남자의 차림새가 전립을 쓰고 지휘봉 같은 방망이를 든 것이 장교인 듯하니 이렇게 길에서 체면없는 애정행각을 펼칠 신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은 이 그림을 두고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옛 정인을 그리워 못 잊다 급기야 이 닿을 만한 여인에게 구구히 사정하여 겨우 불러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여기서 이렇게 다시 헤어져야 하는 듯하다”며 “담모퉁이에 비켜서서 동정 어린 눈길로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이 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이라고 풀이했다. 해석이야 보는 사람 마음이다. 오른쪽에 숨어있는 여인을 남자의 정실 부인으로 보는 이도 있다. 사내 품에 안긴 여인은 뒷모습이지만 한참 어려 보인다. 야근하는 남편이 미심쩍어 몰래 뒤를 밟은 여인이 급기야 ‘못 볼 장면’을 목격한 것이라면 그녀의 갸름한 눈은 동정이 아닌 원망의 눈빛이다. 조선시대 화류계에서는 대개 영문(營門)의 장교나 무예청 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 화첩에서 그들은 새빨간 도폿자락을 휘날리며 자주 등장한다. 삶에 대한 열정일지 모를 그 붉은색은 ‘단오풍정’에서 그네 타는 여인이 입은 치마 색과 똑같은 색이다. 야간 통행금지를 소재로 한 ‘야금모행’에서 그는 지체 높은 선비와 도도한 기생의 밤길을 막아섰다. 양반 체면 무릅쓰고 갓테를 숙여 인사하는 남자 곁에서 여인은 보란듯이 긴 담배만 피워대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몸종인 동자만 괜히 고생이다.
마지막 그림인 ‘유곽쟁웅(유곽에서 남자들끼리 다투다)’에서는 술집 손님들의 주먹다짐을 붉은 옷 입은 무예청 별감이, 기둥서방의 도리로 말리는 중이다. 싸움의 장본인은 갓 망가지고 웃통이 벗겨진 채 씩씩거린다. 얻어맞은 귓전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젊은이는 분하고 억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서도 문앞에 나온 기생은 긴 담배만 피울 뿐이다. 염려보다는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이처럼 혜원전신첩의 주인공은 단연 여인들이다. 남녀유별, 신분차별의 당대 유교질서를 따르는 듯하지만 그림 속 여인들은 작은 일이 동요하지 않고 늘 대범하다. 못 이긴 척 따라 나서도 자존심을 구기지는 않으며, 담담하면서도 당당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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