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최고의 무역협정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원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29일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때리기’ 이전에 미국 재계에서도 한미 FTA를 두고 ‘황금률(gold standard)’이라고 표현했다. 한미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이 그만큼 잘 맞아떨어진 협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 교역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1년 562억1,000만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상품 수출은 지난해 664억6,000만달러까지 늘었다. 연평균 3.4%의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전체 수출이 연평균 2.3%씩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미 FTA 효과가 상대적으로 컸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동차와 서비스에서 크게 이득을 봤다. 2011년 3억8,000만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미국산 자동차 수입 규모는 2016년 17억4,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35.5%. 서비스 수입도 같은 기간 268억2,000만달러에서 289억3,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다 보니 교역 규모도 커졌다. FTA 협정 발효 이후 연평균 성장세가 1.7%였다. 같은 기간 글로벌 교역 규모가 연평균 2%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국의 무역적자였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2011년 116억4,000만달러에서 2015년 258억1,000만달러로 121.7%나 급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의 근거로 제시하는 논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역적자의 겉보다는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FTA 체결 이후 우리 기업은 미국에 공장 건설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실제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FTA 협정 체결 이전 22억달러(2009~2011년 연평균)에서 57억달러(2012~2015년 연평균)로 3배나 급증했다.
더구나 미국의 무역적자 폭이 커진 것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을 위해 중간재를 한국에서 들여온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실제로 2016년 대미 상품무역흑자 233억달러 중 자동차 관련 산업을 빼면 흑자는 35억달러로 쪼그라든다. 더욱이 미국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이들 제품 가운데 열에 여덟은 국경은 넘지만 사실상 계열사 간 이뤄지는 ‘내부거래’다. 무역수지 흑자가 ‘착시효과’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익 불균형’의 주범으로 꼽고 있는 자동차와 철강 업계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관세가 2.5%에 불과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관세가 8%였다. FTA로 인한 무관세 혜택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더 크게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무역흑자가 크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글로벌 기업의 기업 내 수출이고 우리 국민경제에 큰 과실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미국 측에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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