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일본의 전범 기업이 대주주인 코스닥 업체의 사외이사로 3년 넘게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각의 장관 후보자가 전범 기업의 경영에 관여해왔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부실한 검증 시스템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백 후보자는 지난 2014년 3월20일 코스닥 상장사인 티씨케이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백 후보자는 임기 2년을 마친 지난해 3월23일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됐다. 티씨케이는 반도체·태양광 등의 부품과 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1996년 일본의 도카이카본과 한국의 케이씨텍이 공동 설립했다. 최대주주인 도카이카본은 탄소 소재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지만 중일전쟁 등에 전쟁물자를 납품한 이력으로 전범 기업으로 꼽히는 업체다. 1918년 흑연 생산업체로 출발한 도카이카본은 총알·포탄 등은 물론 해군 군수장비 원재료를 생산, 납품했다. 도카이카본의 사사에는 1937~1941년 상공대신으로부터의 각종 전쟁물자 조달 지시가 상세히 적혀 있다. 특히 1940년 8월15일에는 한국의 남포 등에 조선동해전극을 설립해 중일전쟁 군수물자를 조달하기도 했다. 2012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가 발표한 현존하는 299개 전범 기업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티씨케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백 후보자의 활동 분야는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로 돼 있으며 백 후보자는 연간 이사회에 80% 넘게 참여했고 연간 3,600만원, 3년간 1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백 후보자는 티씨케이의 사외이사로 3년 넘게 활동하면서도 최대주주인 도카이카본이 일본의 전범 기업이라는 이력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로 도카이카본이 전범 기업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백 후보자는 티씨케이의 사외이사에서 이날 중도 퇴임했다.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산업부 측은 “백 후보자가 과거 티씨케이의 2대주주인 케이씨텍에 기술이전을 했던 인연으로 사외이사 제의를 받아 수락했다”며 “사외이사로 받은 보수도 절반은 학교 발전기금으로 냈다”고 설명했다.
티씨케이는 1996년 8월 ‘한국도카이카본’으로 설립됐다. 티씨케이(TCK)라는 회사명은 영문 ‘TOKAI CARBON KOREA CO., LTD.’의 약호다. 설립 당시에는 고순도 흑연제품의 제조·수입판매, 탄소제품의 제조 및 수입 업체였다. 현재는 반도체·태양전지 및 LED용 부품을 제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태양광 장비 부품인 고순도 그라파이트와 LED 서셉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분구조는 일본의 도카이카본 35.4%, 반도체 장비 업체인 케이씨텍 28.32% 등이다. 티씨케이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소재 기업으로 꾸준한 매출 성장을 보이며 높은 배당성향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5.7%의 배당성향으로 주당 500원을 배당해 도카이카본이 20억원을 챙겨갔다.
티씨케이의 경영은 일본과 한국이 절반씩 참여한다. 최대주주인 도카이카본과 2대주주인 케이씨텍이 공동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현재 대표이사는 비상근인 쓰지 마사후미 회장과 상근인 박영순 전 케이씨텍 사장이 공동으로 올라 있다. 감사도 도카이카본 경영기획실장인 하지카노 미도리와 동북아산업교류협회장인 이창세씨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티씨케이의 주가는 백 후보자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에너지 분야 전문가 5명 중 한 명으로 영입되며 대선 테마주로 급등세를 탔었다. 4월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는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정연길 창원대 나노신소재공학부 교수, 양성훈 베이츠화이트 컨설턴트, 우타관 성일터빈 대표, 김용식 비제이파워 대표가 경선캠프 산하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김광두 위원장)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백 후보자의 캠프 합류 후 3만2,000원대이던 티씨케이의 주가는 연속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태양광주가 새 정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수혜주로 주목을 받을 때도 티씨케이는 테마주 반열에 올랐다. 문 대통령의 당선으로 ‘탈(脫)석탄 탈원전’ 정책에 가속도가 붙으며 증시에서는 풍력ㆍ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주들의 수혜가 기대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발표 이후 티씨케이의 주가는 4만원대에 올라서며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가 몰리기도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과거 변호사 시절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했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전범 기업의 배상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김광수·이수민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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