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광주 전체가 들썩인다. 직관(직접 관전) 열풍이 청소년들 사이에까지 번질 정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구름 관중이 KIA챔피언스필드를 가득 메우면서 일대 상권도 부활했다. “몇 해 전만 해도 호프집 등 경기장 주변 가게가 문을 닫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손님들로 넘쳐난다”며 인근 상인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KIA의 홈 관중은 시즌 전체 144경기의 절반 이상을 치른 11일 현재 55만명을 훌쩍 넘겼다. 경기당 평균 1만4,000명 이상이 찾았다는 얘긴데 이대로면 구단 첫 100만 관중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경기장 주변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TV 채널은 KIA 경기 중계에 맞춰져 있다.
◇인근 상인들도 “타이거즈 덕에 살맛”=“(마지막 우승인) 2009년 때보다 더 분위기가 좋다” “타이거즈 덕분에 살맛 난다”는 상인들의 반응만 봐도 KIA의 성적을 잘 알 수 있다. 올 시즌의 KIA는 그야말로 날개 단 호랑이다. ‘미친 방망이’라는 수식어도 모자라는 폭발적 타선으로 3개월간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지옥의 원정 9연전이 고비였지만 KIA는 이 기간에 6승1패(2경기는 우천 연기)를 거뒀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2위 NC와의 홈 3연전과 관계없이 전반기 1위를 이미 확정했다.
KIA는 미국·일본에도 없던 8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 행진을 벌였고 지난 5일 SK전에서는 한 이닝에 12점을 올리기도 했다. 질 때도 화끈하게 지는 KIA의 신드롬은 좀처럼 식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100억이 안 아까운 최형우=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인 삼성 최형우에 KIA가 4년에 100억원을 베팅했을 때 부정적인 여론이 만만찮았다. 국내프로야구(KBO 리그) 최초의 100억 계약에 ‘거품 논쟁’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형우가 가세한 KIA 타선은 무게감부터 달라졌다. 지난해 9위, 2015년 최하위였던 팀 타율은 올 시즌 3할이 넘는다. 단연 1위. 타점·출루율 1위 최형우의 공이 가장 크다. 더불어 백업까지 춤추는 KIA 타선은 최근 10경기만 놓고 보면 팀 타율이 4할대다. KIA는 이제 KBO 리그 역대 최고 팀 타율에 도전한다. 이 부문 기록은 2015년에 삼성이 세운 0.302다.
KIA는 최형우뿐 아니라 SK와의 트레이드로 얻은 이명기와 김민식도 각각 테이블세터와 주전 포수로 자리 잡는 등 외부수혈로 100% 효과를 보고 있다. 선수 가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과감한 투자가 흐뭇한 결실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군에서 돌아온 유격수 김선빈과 2루수 안치홍의 최강 ‘케미스트리’, 임기영이라는 선발 마운드의 혜성은 KIA 타이거즈에 ‘KIA 어벤져스’ 별명을 입히고 있다. 임기영은 2014시즌 뒤 FA 송은범을 한화로 보내는 과정에서 보상선수로 데려온 자원이다. 이적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지만 기다린 보람은 기대 이상이다.
◇건강한 외국인 선수들=프로야구 구단들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외국인 선수의 부상. 전력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것으로 믿고 거액을 쏟아부은 외국인 선수가 드러누우면 사실 방법이 없다. 디펜딩 챔피언 두산 등 경쟁팀의 외국인 선수가 거의 예외 없이 부상 악령에 시달린 반면 KIA는 약 40억원을 들여 데려온 투수 헥터 노에시와 팻 딘, 외야수 로저 버나디나가 고맙게도 모두 큰 부상 없이 건강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KIA의 유일한 약점은 평균자책점 6점대의 불안한 불펜. 그러나 외국인 선수 3인방의 존재감 덕에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기행왕’ 김기태의 힘=2015시즌부터 팀을 맡은 김기태 감독은 ‘기행’으로 더 주목받았다. 첫해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2루 베이스 옆에 드러누운 ‘사건’은 지금도 회자된다. ‘주자는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 이상 벗어날 경우 아웃된다’는 규정을 몸을 던져 설명한 것이다. 또 한 경기에서는 수비 때 3루수를 포수 뒤로 이동시키려다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다른 감독들이 하지 않는 것들을 김 감독은 주저 없이 행동에 옮긴다. 이 모든 것들은 이기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비웃음을 사는 감독의 그런 고민이 모여 지금의 KIA가 완성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2015년 7위로 1년 전보다 한 계단 올라선 KIA는 지난해 5위에 올라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를 따냈다. 그동안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한 팀 재건 작업이 취임 3년째에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 리더십’도 한몫=조명받지 못하는 선수에게 더 살가운 김 감독의 ‘형님 리더십’은 적정 온도로 선수단을 감싸고 있다.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퇴출설에 내몰렸던 버나디나는 김 감독의 믿음으로 3번 타순에 안착했다. 최소 100타석의 기회는 주고 난 뒤에 평가해야 한다는 게 타자들을 대하는 김 감독의 원칙. 버나디나는 감독에 대한 고마움에 방망이를 더 곧추세운다. 주전·비주전과 토종·외국인의 구분이 무의미한 ‘원팀’ KIA는 8년 만의 ‘V11’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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