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박쥐’로 불리는 ‘붉은박쥐(마이오티스 루포니거)’의 게놈이 세계 최초로 분석됐다.
멸종위기에 처한 붉은박쥐의 보전과 복원을 위한 유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오래 사는 붉은박쥐의 유전변이는 인간의 장수 등을 연구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박종화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게놈산업기술센터(KOGIC) 연구진이 붉은박쥐의 게놈을 해독하고, 다른 생물과 비교·분석을 마쳤다고 12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로 붉은박쥐는 한국에서 게놈을 해독한 최초의 박쥐가 됐다.
박쥐는 몸 크기 대비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포유류다. 박쥐와 크기가 비슷한 쥐는 2~3년 정도 산다고 알려졌는데, 박쥐의 경우는 30년 정도 살 수 있다. 이번 연구로 긴 수명, 비행능력, 초음파 감각, 낮은 시력에 관한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야생 생물인 박쥐의 유전자가 인간의 수명과 질병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붉은박쥐는 국내에 확인된 개체 수가 450~500마리밖에 되지 않는 희귀한 생물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돼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충북 단양 고수동굴에서 죽은 채 발견된 붉은박쥐를 이용해 DNA 시료를 얻고, 게놈을 해독했다. 연구팀은 붉은박쥐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를 다른 박쥐 7종과 육상 포유동물 6종의 게놈과 비교하면서 관련 유전적 변이를 분석해냈다.
특히 붉은박쥐의 게놈에서는 박쥐 색깔과 맹독으로 알려진 ‘비소(As)’에 강한 특성 등에 관한 유전변이를 찾아냈다.
박쥐는 일반적으로 검은색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다. 연구진은 다른 동물의 게놈과와 붉은박쥐의 게놈을 비교하면서 붉은색을 띠게 만드는 유전변이를 발견했다. 또 붉은박쥐에는 비소(As)저항성 유전자 서열에 변이도 찾았다. 이 부분은 붉은박쥐가 중금속으로 오염된 동굴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진화적 단서를 제공한다.
또 이번 연구를 통해 붉은박쥐의 개체 수가 마지막 빙하기 후반부터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5만 년 전부터 붉은박쥐가 속한 애기박쥐과 박쥐들의 개체 수가 급감했고, 붉은박쥐가 특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의 주저자인 박영준 UNIST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박쥐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등장으로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일 수 있다”며 “박쥐의 감소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밝히려면 추가적인 박쥐 게놈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로 박쥐는 해충을 잡아먹거나, 벌처럼 꽃가루를 옮기는 등 생태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박종화 교수는 “박쥐는 생물학적으로 고래만큼이나 재미있는 동물이며, 장수하는 동물로서, 인간에게 매우 귀중한 생물자원”이라며 “국가적으로 이런 생물자원의 유전정보를 모아 빅데이터로 만들 필요가 있으며, 박쥐 게놈에서 장수 관련 유전정보를 더 깊이 연구해, 궁극적으로 암 치료와 수명연장에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류덕영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과 함께 진행했으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와도 협업했다. 연구 내용은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지난 5일자로 발표됐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