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투자를 즐기는 김주한(37)씨는 최근 평소에 가지 않는 클럽에 들렀다. 갑자기 춤을 추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한 개인간거래(P2P·Peer-to-Peer) 업체에서 이곳의 매출을 담보로 잡고 내놓은 대출상품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번잡해서 잘 안 맞는다고 느끼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금리 시대에 김씨처럼 목돈 투자를 위해 P2P 세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P2P 투자가 활성화된 지 2년 만에 P2P 업체들에 투자된 총액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P2P 업체 수도 지난 2015년 말 27개에 불과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150개를 돌파했다. 증가세가 가팔라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개가 넘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P2P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겨냥한 컨설팅 업체도 생겼다. 대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주력상품이 무엇인지에 따라 맞춤형 설계를 해주는 것이다.
◇P2P에 열광하는 2030세대=P2P 업체들이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2030세대가 열광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성향뿐 아니라 사회 트렌드가 상품에 반영돼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미술품 담보대출부터 아이돌 공연 투자상품에 이르기까지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는 지점 방문보다 모바일에 익숙하다”면서 “적은 돈으로도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것이 P2P 투자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투자층도 넓어지고 있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일반인의 투자가 은행 펀드 가입 정도로 제한적이었지만 P2P 투자상품을 통해 평소 고액자산가들만 할 수 있었던 대체투자의 기회가 보편화돼 일반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재테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술 적용에 거부감이 없는 2030세대에게 P2P 모델은 안성맞춤이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P2P 신용대출의 누적 대출액은 1,387억여원에 달한다. 투자자들이 모여 돈을 빌리는 차주들은 기존 금융권의 관점에서 보면 저신용자지만 P2P 업체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시스템으로 다르게 접근한다. P2P 금융업체 ‘렌딧’은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서 제공하는 금융 데이터를 토대로 대출 신청자의 행동 패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록 등을 자체 분석해 개인화된 적정금리를 산출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금융기관에서 받은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낮아도 상환 의지가 확고하다는 판단이 서면 이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투자자를 모집하게 된다. 차주가 늘어날수록 렌딧은 데이터를 축적해 점점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렌딧은 20일 P2P 신용대출만으로 업계 최초로 누적 대출액 500억원을 돌파했다. 렌딧에 자주 투자하는 이성훈(27)씨는 “새로운 신용평가 방식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대출해줄 수 있게 되고 나도 일정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의미 있는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P2P 투자는 점점 안정되며 ‘중위험 중수익’의 대표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를 상회하는 고수익 P2P 상품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수익률이 높을수록 위험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3월 말 기준 전체 P2P 금융사들의 평균 수익률은 연 13%가량을 기록했다. 이효진 8퍼센트 대표는 “ELS 같은 투자상품의 위험 대비 목표 수익률이 그리 높지 않고 오피스텔 투자도 연 수익률 6%를 넘기 어려운데 P2P 상품은 중위험 중수익을 보장받는 좋은 수익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폭 넓히는 P2P 업계=최근에는 기존 P2P 대출 모델을 활용해 P2P 펀드 및 보험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콰라(QARA)소프트는 P2P 투자 플랫폼 ‘콰라’를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을 응용한 ‘손정의따라잡기펀드’를 출시했고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미국 사업 파트너와 글로벌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P2P 펀드는 개인투자자가 펀드매니저에게 자금을 투자하면 펀드매니저가 본인 자금에 투자자의 자금을 더해 본인의 펀드를 직접 만들고 운용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기존 증권사들의 펀드보다 수수료도 훨씬 낮다.
P2P 모델은 보험 영역까지 진출했다. P2P 보험은 동일한 위험보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형성해 돈을 적립하면 적립금 일부는 사고발생 시 손실보전에 쓰고 사용되지 않은 적립금은 보험가입자에게 환급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인바이유’ ‘다다익선’에서 P2P 보험상품을 내놓고 있다. 기존 보험사들도 P2P를 비롯한 새로운 방식의 ‘인슈어테크(insure+Tech)’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메인스트림의 시선=P2P를 앞서 시작한 해외 선진국에서는 P2P 업체가 기존 금융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에서 출발한 세계 최초 P2P 금융업체 ‘조파(ZOPA)’는 지난달 초 40개가 넘는 업체들로부터 3,200만파운드(약 472억원)의 투자를 받아 디지털은행 설립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이에 대해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BOE) 총재가 “핀테크 업체들의 높아진 인기는 전통적인 주류 대출 모델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P2P 업계의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처음에는 은행권이나 증권가에서만 투자를 시작했지만 카드나 보험업계에서도 P2P 업체 투자를 눈여겨보고 있다. 어니스트펀드는 2015년 신한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10억원의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KB인베스트먼트·신한캐피탈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60억원을 추가 유치했다. 또 P2P 업체 ‘펀다’는 소규모 상점 관련 데이터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비씨카드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시중은행들도 P2P 업체를 비롯한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P2P 업체들의 신기술은 은행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들이 많다”며 “앞으로 투자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P2P 업계에도 장밋빛 전망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5월 시행된 ‘P2P 대출 가이드라인’이다. 모든 P2P 업체에 대해 연 1,000만원으로 투자한도가 일률적으로 제한돼 P2P 업계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6월 기준 47개 회원사의 전월 대비 대출 증가액은 900억원에 그쳐 5월 증가액 1,200억원에 비해 25%나 감소했다. 금융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금융당국이 P2P 업계에 대해 보다 섬세한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