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역대 정부의 화두였다. 에너지 자급률은 1차 에너지 공급 가운데서 국산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자급률이 낮다는 의미는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것인데 그만큼 경제구조가 원자재 가격 등락 등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10%에 육박했던 우리 경제성장률을 지난 1980년 -1.7%까지 끌어내렸던 게 바로 제2차 오일쇼크다. 이후 해외 자원개발이 에너지정책의 중심축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제는 단기적 성과 달성 요구에 막히거나,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춤을 춘 탓에 에너지 자급률이 20년째 제자리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잇따랐던 광구 ‘헐값 매각’이다.
IMF에 구제금융을 받은 지 반 년 여가 지난 1999년 6월. 한국석유개발공사는 매장량이 1억배럴인 이집트 칼다 광구의 지분 2%를 800만달러에 호주 노버스사(社)에 매각한다는 계약을 발표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자액을 이미 회수했다는 것. 칼다 광구는 석유공사가 지분을 판 뒤 국제유가 상승에 ‘몸값’도 급격히 뛴다. 당시 4억달러였던 광구의 가치는 2013년 42억달러까지 올랐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매각을 두고 뒤에서 웃었다고 한다. 에너지정책을 두고 전략도, 전술도 없이 그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춤을 줬다. 칼다 광구처럼 IMF 위기 직후 우리가 팔아치운 광구만 20여개에 달한다. 2%이던 원유 자급률을 2010년까지 10%까지 끌어올리겠다던 목표도 그렇게 덧없이 사라졌다.
이후 개점휴업 상태였던 해외 자원개발을 다시 살려낸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이미 2008년 국제유가가 140달러를 향하고 있던 상황. 10년간 손을 뗀 탓에 쌓인 ‘노하우’도 없었지만 단기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비싼 값에 지분을 사들이는 게 반복됐다. 결국 이명박 정부 해외 자원개발은 국정감사로 이어졌다. 2016년에는 자원개발의 핵심 정책수단인 ‘성공불융자’ 예산이 없어지는 초유의 결과까지 벌어진다.
오락가락하기는 신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효시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도입된 발전차액제도(FIT)다. FIT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로 공급한 전력의 거래가격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고시한 기준가격보다 낮은 경우에 그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건 ‘녹색경제’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였다. 2010년 FIT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로 바뀌면서 급격히 설비가 늘기 시작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무관심으로 여전히 신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은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RPS는 대규모 발전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짓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권 입맛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춤을 추던 사이 그나마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원전의 힘이 컸다. 실제로 원전을 뺀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률은 20여년간 2%대를 맴돌고 있다. 1995년 2.5%였던 원전 제외 에너지 자급률은 2005년 2.2%, 2010년 2.5%, 2012년 2.6%였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이 급격히 사라지면 에너지 안보가 휘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이 자급률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원료 등의 국산화율이 95%에 달하기 때문”이라며 “LNG는 발전소도 전혀 국산화가 안 돼 있고 원료도 수입해와야 하는데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급하게 추진되는 것도 문제다.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지 않을 경우 다음 정권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손바닥 뒤집듯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발전소는 짧아야 30년이 돌아간다. 장기비전을 보고 해야 하는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매번 뜯어고치면 에너지정책이 어렵게 된다”며 “그래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밀어붙이는 탈원전 정책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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