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문재인 대통령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공약 사안이던 기초연금 인상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되던 기초연금을 내년 상반기부터 25만원, 오는 2021년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원 조달 방안은 쏙 빠졌다. 당시 국정기획위의 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나갈 것이며 재정계획 태스크포스(TF)에서 정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간 복지 등 달콤한 혜택만 발표하고 돈은 어디서 구할지 침묵한 패턴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실제 각종 선심성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는데 재원 조달 방안은 없다. 각 부처는 해당되는 대통령 공약 사안의 구체 방안을 앞다퉈 국정기획위에 보고했고 국정기획위는 이를 받아 실제 정책에 입안하겠다고 확정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보통 선심성 정책은 대선 이후 걸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각 부처가 충성 경쟁을 하듯이 다 입안하겠다고 했고 국정기획위도 이를 받아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재원대책을 들여다보면 들어갈 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경제신문이 그동안 거론된 세법 개정 사안에 따른 세수 효과를 최대치로 분석한 결과 연간 5조1,300억원에 그쳤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는 명목세율 인상이 없다고 밝히면서 세수가 적었다. 그나마 가장 덩치가 큰 것이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율을 20%에서 25%로 올리는 안이며 1조5,000억원의 세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 비과세·감면 축소로 1조2,000억원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며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조정(5억원→3억원)으로 6,000억원,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비과세 제도를 분리과세로 전환하는 것이 5,000억원 등의 세금 증가 효과가 있다.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현재 7%)를 극단적으로 폐지해 5,000억원가량 세수가 늘고 기업소득환류세제 강화로 3,000억원, 금융소득 분리과세 한도를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춰 1,300억원 등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유흥업 부가가치세를 신용카드사가 대리 납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세수 효과도 국세청이 지난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약 4,000억원에 그쳤다.
현재 다수의 전문가들은 순조로운 부동산시장, 기업 이익 증가 등으로 세수 자연증가분이 문 대통령의 공약처럼 약 10조원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합쳐도 재원은 15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문 대통령 공약집에서는 재정개혁으로 연간 22조4,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렇게 개혁할 부분이 많았다면 진작에 다 단행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충격을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것은 반발이 있는 사안이 생기면 그때그때 무마하기 위해 재정으로 땜질해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재정으로 때우려는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소득주도 성장이라며 각종 복지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는 다르게 말하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재원대책이 없는 정책은 결국 국가부채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지만 공공기관까지 합하면 그렇게 낮은 수준도 아니므로 제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지난해 3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0%대)에 비해 월등히 낮았지만 비금융공기업 등을 포함하면 64.4%(2015년 기준)로 껑충 뛰어올랐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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