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라이언’의 열혈팬인 김모(25) 대리는 며칠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카카오뱅크에 가입하면 신상 라이언 이모티콘을 증정한다는 내용의 이벤트 소식을 접했다. 화장품 파우치부터 베개 커버까지 모조리 라이언 캐릭터로 도배해온 김 대리는 망설임 없이 참여를 결정했다. 지난 27일 출근길 10분을 투자해 은행 계좌 하나를 뚝딱 만들고 나니 좋아하는 캐릭터가 곧바로 카카오톡에 저장됐다. 김 대리는 “이미 다른 은행에 계좌가 있어 딱히 새로운 계좌가 필요 없지만 이왕 만든 김에 이것저것 써볼 것”이라며 “애플리케이션이 정말 쉽고 간단해 금융회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리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모(47) 부장은 28일 아침 회의 후 조용히 카카오뱅크 앱을 내려받았다. 카카오뱅크는 전날 저녁 부서 회식자리에서 화젯거리였고 기대보다 한도와 금리 조건이 좋아 놀랐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장은 생전 처음 신분증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비대면 계좌를 만들었다. 대출 한도와 금리는 불과 1분 만에 확인됐다. 5,350만원에 3.02%라는 숫자가 떴다. 그 순간 이 부장의 머릿속에는 딱 10개월 전 은행지점 창구에 주눅 든 채 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은행 직원은 3,000만원 마이너스 대출을 해주면서 별의별 서류를 요구했다. 금리를 깎아주는 조건으로 각종 자동이체는 물론 필요 없는 체크카드까지 발급받게 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대출 금리가 4.23%였다. 이 부장은 “20년 주거래 고객인데다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은행에서 알아서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줬을 거라 믿고 살았다”며 “주거래 은행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2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출범 하루 반 만에 신규 계좌 50만좌의 기록을 세웠다. 불과 오픈 30시간 만에 케이뱅크 출범 100일 실적인 40만좌를 가볍게 뛰어넘었고 지난해 은행권 전체의 월평균 비대면 계좌 개설 건수인 15만좌의 3배 이상 실적을 냈다. 김 대리와 이 부장처럼 카카오뱅크를 선택한 배경은 각자 달랐지만 여러 가지 인기 요인에 힘입어 금융권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처음 은행 거래를 시작하는 대학생에게, 또는 월급통장을 만드는 사회초년생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다. 하지만 파스텔 톤 캐릭터 카드와 무료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증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대에서는 카카오뱅크가 ‘금융’이 아닌 카카오 브랜드의 추가 서비스로 인식되는 것도 디자인 요소 덕분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카카오뱅크의 핵심 전략은 라이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카카오뱅크는 월 사용자가 4,895만명에 달하는 국민 앱 카카오톡과 친숙한 캐릭터를 앞세워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디자인에 끌려 발을 들였지만 막상 가입 후 놀라게 되는 부분은 ‘가격’과 ‘편리성’이다. 우선 카카오뱅크의 ‘킬러 콘텐츠’인 해외 송금 수수료는 시중은행의 10분의1 수준이다. 올해 말까지 CU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에서 출금도 무료로 할 수 있다. 대출 금리도 신용대출의 경우 최저 연 2.86%로 시중은행 평균 금리(3.5~6.5%)보다 낮으며 대출 한도는 은행권 최고 수준(1억5,000만원)에 달한다. 예·적금의 경우 별도의 우대 금리가 적용되지 않아도 최고 금리가 연 2.0%에 달한다.
시중은행과 달리 복잡한 가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시중은행의 비대면 채널 신규 계좌 개설에 소모되는 시간은 대략 10~30분 내외지만 카카오뱅크는 7분이면 된다. 또 카카오톡 주소록을 연동해 카톡을 보내듯이 10초 안에 간단하게 돈을 보낼 수 있고 예·적금 가입, 대출 신청 등도 5분을 넘기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버튼만 몇 개 톡톡 누르면 적금 가입은 물론 대출 신청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신청할 때와 같이 권유를 가장한 ‘꺾기’를 당할 우려도 없다.
카카오뱅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지만 일각에서는 초기 돌풍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넷은행이 10년 전 탄생한 미국의 경우 초기 30개 은행 중 절반 이상이 폐업했다. 자산관리를 통한 수익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성패는 자산관리를 통한 수익 창출이고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에서 ‘쉽고 빠른 대출’을 내세운 카카오뱅크에 대한 우려도 있다. 쉽게 빌린 만큼 쉽게 쓰거나 주식 등에 투기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계좌 개설이 쉬워 대포통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에 대해 카카오뱅크 측은 “대포통장을 만들려면 스마트폰과 카카오톡 계정까지 넘겨줘야 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비용이 많이 들도록 만들었다”면서 “대포통장을 찾아내는 기술도 적용했고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도 은행에 버금가게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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