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9년간 참여 정부 때의 성공과 실패를 철저히 분석해왔습니다. 종부세(종합부동세) 파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결론들이 나올지는 몰라도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입니다.”
세제 개편안 발표 이전 여권의 한 관계자에게 조세 정책의 방향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 관계자가 곧 정부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2일 발표된 문재인 정부 첫 세법 개정안은 참여 정부에 대한 ‘타산지석’이 잘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3년 말 일부 고액 자산가들을 타깃으로 종부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집값이 빠르게 뛰면서 대상자가 일반 서민에까지 번졌다. 종부세 대상자는 2005년 6만명이었지만 2006년엔 33만명, 2007명 47만명까지 치솟았다. 조세 저항이 거세게 일었고 정부 지지율도 떨어졌다. 이후 진보 정권에는 ‘종부세 트라우마’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점을 타산지석 삼아 고소득자·대기업 위주의 부자 증세 기조를 가져가되 당장 시장과 민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한 정책은 최대한 배제하는 전략을 폈다. 그 결과물이 초고소득자·초대기업으로 대상을 좁힌 명목세율 인상이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렸지만 대상자는 9만3,000명 정도에 그쳤다. 법인세 인상은 영향을 받는 기업이 129곳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부자 증세를 했다는 명분은 세우고 조세 저항은 약화 시킬 수 있었다.
세법 개정안과 함께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은 파장이 컸다. 하지만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거래를 하지 않으면 세금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만큼 시장에 큰 영향이 없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양도세보다 파급력이 큰 보유세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포함하려고 했다가 빠진 내용을 보면 새 정부의 의중을 더 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항목이 금융소득 종합과세다. 지금은 이자·배당 소득이 연간 2,000만원이 넘어야 종합과세 하던 것을 1,000만원으로 낮춰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인데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이 방안을 시행하면 약 37만명이 종합과세 대상자가 된다. 기존 종합과세자도 많게는 수백만원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조세 저항에 대한 우려가 더 컸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슷한 이유로 현재 비과세인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배제됐다. 이 방안을 시행하면 약 38만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조세 정의 차원에서도 이번에 배제됐던 정책들을 언제까지나 미루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보유세·경유세 인상이나 근로소득 면세자 축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번에 미룬 숙제들을 치러야만 할 순간이 올 때가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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