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1879~1910) 의사는 만주 시찰을 나온 일본 관료 이토 히로부미를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뤼순 감옥으로 끌려갔다. 옥중에서도 안 의사는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나라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 태운다’는 뜻으로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를 적었다. 안 의사는 서거하기 전 5개월 동안 약 200여 점의 이 같은 붓글씨를 남겼다. 옥중에서도 꼿꼿했던 안 의사의 흔들림 없는 몸가짐은 그를 취조하던 일본인들까지도 감화시켰다. 행서체로 힘있게 쓴 여덟 글자의 오른쪽 위에 적힌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은 당시 뤼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인데, 안 의사에게 글을 부탁해 받아간 사람이다. 왼쪽에는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라 적혀있고 그 아래에 약지가 잘린 안중근 의사의 먹물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선명하다. 검찰관 야스오카가 죽는 날까지 간직하던 이 유묵을 그의 큰 딸이 물려받았고 이후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 숭모회’에 기증했다. 1993년 보물 제569-22호로 지정된 이 유묵은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한 안 의사는 광복의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그 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순국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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