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업계 맏형인 현대자동차의 경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내수 판매와 수출이 정체되면서 국내 공장은 올 상반기에 글로벌 생산 거점 중 가장 낮은 가동률을 기록했고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개발(R&D) 비용도 전년 대비 10% 가까이 줄었다. 노조와의 임금 협상 장기화로 파업일수가 늘어날 경우 올해 판매 목표 달성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판매 부진에 급감한 국내 공장 가동률=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 상반기 국내 공장의 가동률은 96.3%로 가동률을 공개한 글로벌 생산거점 7곳 중 가장 낮았다. 현대차의 국내 공장 가동률이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 상반기 공장 가동률은 상용차 공장인 터키가 114.9%로 가장 높았고 러시아(114.2%), 체코(108.9%), 인도(100.5%), 북미(98.9%), 남미(97.3%) 순이었다. 합작법인인 중국 공장 가동률은 공개되지 않았다.
공장 가동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차량 판매가 부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차 공장 가동률은 매년 브라질이나 인도·터키보다는 앞섰지만 올 상반기에는 이마저도 뒤집혔다. 상반기는 노조 파업처럼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는 특별한 변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판매 부진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시장에서 ‘그랜저’가 8개월 연속 1만대 판매를 기록하면서 내수 판매를 떠받쳤지만 ‘아반떼’나 ‘쏘나타’ ‘투싼’ 등 다른 주요 차량의 판매가 부진하고 수출 물량도 크게 늘지 않았다.
현대차의 상반기 국내 공장 가동률은 지난 2014년 이후 3년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R&D 여력도 떨어져=현대차는 해외시장에서 수익성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당장 판매량이 감소하더라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플릿(렌터카·택시 등 법인 판매) 판매를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판매가 올 1~7월 40만423대로 전년 대비 10.8%나 감소했다.
현대차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5.4%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10.3%)을 정점으로 지난해 5.5%로 반토막 났다. 글로벌 영업이익률 순위도 4위권에서 9위권으로 밀려났다. BMW(11%) 등 프리미엄 브랜드뿐 아니라 경쟁업체인 폭스바겐(7.7%), 도요타(7%), 닛산(6.3%) 등에도 못 미친다.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R&D 비용도 줄이고 있다. 상반기 R&D 비용은 9,95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조55억원) 대비 10% 이상 줄었다.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중은 2.1%를 유지했지만 글로벌 경쟁업체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친환경차는 물론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R&D에 투자할 여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다.
◇상반기에 연간 판매 목표 43% 달성에 그쳐=올해 현대차의 판매 목표는 508만대다. 하지만 상반기 판매량은 219만7,689대로 목표치의 43.2%에 머물렀다. 판매 목표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 289만대를 팔아야 한다. 중국 시장 분위기가 반전된다고 해도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노조와의 임금협상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 하반기 실적 회복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노조는 14일 전체 조합원 파업 출정식을 진행했다. 이미 두 차례의 부분 파업을 벌였고 향후 파업 수위를 더욱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대기 고객 이탈로 이어져 판매 부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의 위기는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제조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대차의 강점인 ‘현대 속도’를 통해 체질 개선과 조직 재정비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