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가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이 이달 말 나올 예정인 가운데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이 “도대체 기아차가 뭘 그리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 봐도 딱히 잘못한 게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진단과 대응’을 주제로 서울 서초구 쉐라톤서울팔래스호텔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박 사장은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일주일 넘게 밤잠을 설쳐 가면서 생각해 봤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박 사장은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 판결을 앞두고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내 “개인적인 소회로 들어 달라”며 속에 담아 뒀던 작심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 사장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이냐 아니냐는 판단 잣대부터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아차는 노동부의 지침을 따르면서 (근로자들에게) 돈도 많이 주고, 충분히 줄 만큼 줬다”면서 “그런데 현대차(005380)와 달리 ‘15일 미만 근무한 근로자는 일할로 계산해서 상여금을 준다’는 문구 하나 때문에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미세한 차이 때문에 판단이 달라진다면 “노동시장에서 분란이 일 것”이라는 게 박 사장의 우려다. 그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 상 잔업과 특근이 많을 수 밖에 없다”면서 “당장 기아차의 잔업 특근 수당만 50% 이상 올라가면 현대차 노조가 가만히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사장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을 전제로 30년 간 임금 및 단체 협상을 해 왔지만 이제 와서 소송을 제기한 노조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두고 노조의 수거 요구가 거세다는 지적에 대해 “수거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사장은 “형사 사건 같으면 피고 최후 변론이 있지만 민사사건은 그런 게 없다”면서 “노조가 30년 간 신의성실 엎고 재판에 회부를 한 만큼 피고의 대표로서 재판부에 최소한의 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탄원서는 일주일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작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경쟁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통상임금 부담까지 떠 안으면 기아차가 잔업과 특근 등을 줄일 가능성도 내비쳤다. 박 사장은 “올해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50% 감소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소매판매 기준으로 전년 대비 8~9% 가량 빠졌다”면서 “이미 지난해부터 판매량이 줄고 있다. 2년 연속 차가 덜 팔리는 것 자체가 회사로서는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박 사장과 함께 정진행 현대차 사장과 황은영 르노삼성 본부장이 참석했다. 이정우 영신금속 사장이 부품업계를 대표해 자리했고, 학계에서는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김수욱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이지만 연세대 교수가 참석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과 신달석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이영섭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도 함께 했다.
김용근 회장은 “법과 규정이 노사 간 교섭력 측면에서 노조에 우월한 힘을 주기 때문에 사업자는 대안이 없고 파업이 관행화되고 있다”면서 “사측 의견의 반영이 어려운 현재 노사정 시스템 대신 학계와 같은 전문가가 주도하는 노사정 협의 기구를 정부가 가동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이날 간담회에서 공개한 ‘자동차산업 글로벌 경쟁력 위기 상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의 내수·수출·생산은 모두 2년 연속 감소했다. 공장가동률도 2014년 96.5%에서 올해 상반기 93.2%로 떨어졌다. 반면 국내 완성차 5개 업체의 연간 평균임금은 2016년 기준 9,213만 원으로, 도요타(9,104만 원), 폴크스바겐(8,40만 원)보다 높은 수준이고, 5개사의 매출액 대비 평균임금 비중도 12.2%로 폴크스바겐(9.5%), 도요타(2012년 7.8%)를 웃돈다. 업계에서는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 마지노선을 10%로 판단한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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