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컨트롤타워 복원이나 사장단 회의 부활 등은 현 상황에서 아예 거론되기조차 힘들다. 그룹 차원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뤄질 창구가 부재한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는 뜻이다. 삼성 각 계열사는 그룹 차원의 사업재편이나 지원 없이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인사나 채용제도 변경 등 조직문화를 좌우할 굵직한 의사결정은 부침이 심할 공산이 크다. 지난해 12월 예정이었던 사장단 인사는 올해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월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 3명의 부문별 CEO와 재무책임자인 이 사장이 매주 만나 토의하는 식으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미래전략실이 사라진 후 삼성전자는 각 사업부장들이 사업의 실권을 쥐되 사업 부문별 대표들의 협의를 통해 주요 현안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평택 반도체 공장 등 예정됐던 주요 투자는 이뤄지고 있으나 조 단위 인수합병이나 신산업 발표 등은 현 체제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 내부에서는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삼성그룹은 60여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미래 먹거리 개발과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해 계열사 간의 면밀한 업무조율이 요구된다. 인사와 전략의 실권을 쥔 미전실이 사라진 후 삼성은 대체 시스템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더구나 삼성은 SK·LG 등 다른 기업집단에 비해 사업범위가 훨씬 넓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에 대한 경험도 거의 없다. 이 부회장의 실형에 따른 조직 내 충격이 너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 체제로 계열사 자율경영 시스템이 비교적 안착됐다고 평가받는 LG나 SK 역시 10년 가까이 실패와 수정을 거듭해왔다”며 “삼성이 이 부회장의 실형에 따라 받는 혼란은 극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홍우·신희철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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