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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CEO 트래비스 캘러닉과의 동승

RIDING SHOTGUN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 글은 애덤 래신스키 Adam Lashinsky의 신간 ‘거침없는 질주: 세계정복을 향한 우버의 여정 속으로(Wild Ride: Inside Uber’s Quest for World Domination)’의 발췌본이다. 저자는 우버의 공격적인 CEO 트래비스 캘러닉 Travis Kalanick과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누비면서 그가 얼마나 역경에 강한 인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포춘이 이 책의 일부를 독점 공개한다.


2013년 3월 18일 촬영한 우버 CEO 트래비스 캘러닉의 모습.





그의 거대한 야망은 사랑할 만하고, 꽉 막힌 무모함은 증오할 만하다. 트래비스 캘러닉은 오랫동안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재계의 악당’이다. 우버는 캘러닉이 자신이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런칭할 때만 해도, 운전자와 운전자가 필요한 시민들을 연결해 주는 단순한 앱이었다. 그러나 이후 6년을 거치며 우버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현재 비상장기업인 우버는 총 76개국에 진출해있다. 2016년에는 총 200억 달러 정도의 예약을 받아 총매출 65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하자, 투자자들은 캘러닉의 창조적 능력에 거액의 베팅을 계속해왔다. 현재 우버가 유치한 대출 및 벤처캐피털 자금은 총 170억 달러, 기업가치는 무려 690억 달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캘러닉의 악명도 함께 높아졌다. 성공을 위해선 어떤 규칙도 위반할 것 같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승리를 쟁취하는 거만한 기업인으로 여겨졌다. 남성중심적 사고로 성차별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도 지목됐다.

포춘의 선임에디터 애덤 래신스키는 신간 ‘거침없는 질주: 세계정복을 향한 우버의 여정 속으로’에서, 우버의 놀라운 성공과 갑작스런 논란에 따른 이미지 추락 과정을 탐구했다. 하지만 저자는 시작부터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캘러닉이 공식 전기를 쓸 다른 경쟁 작가를 고용해 책의 집필을 저지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캘러닉은 태도를 누그러뜨려 취재 협조에 동의했다. 래신스키는 캘러닉을 비롯한 우버의 여러 임원과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 캘러닉은 세간의 인식처럼 ‘나쁜 놈(asshole)’일까? 래신스키가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 캘러닉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으며 파악했던 사실을 아래 발췌문에서 소개한다.



2015년 베이징에서 열린 바이두 월드 콩그레스에 참석해 연설 중인 캘러닉. 그는 지난해 여름 중국 시장 철수를 선언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Ⅰ.

어느 볕 좋았던 여름날, 나는 CEO 트래비스 캘러닉과 진행할 심층 인터뷰를 위해 우버의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도착했다. 시각은 오후 7시 30분이었다. 잦은 야근으로 악명 높은 회사답지 않게 한산한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놀랍게 느껴졌다. 7월 중순이었으니, 젊은 직원들은 한창 휴가를 즐기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2016년 7월 당시까지 5년 이상 숨가쁘게 달리며 쌓였을 피로를 고려하면, 직원들의 태도가 조금 해이해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회사 분위기를 잡는 사람은 캘러닉이었다. 40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그는 여전히 카페인에 의존하는 젊은 창업자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수년 동안 꾸준히 만나온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하지 않을 땐 대개 집에 있고, 연애보단 우버에 훨씬 더 몰두한다는 게 그에 대한 여러 친구들의 평가였다.

약속 시간이 몇 분 지난 후, 필자가 기다리는 책상 앞으로 캘러닉이 도착했다. 그의 개인 공간은 본사 건물 어느층 한구석이었다. 그 곳에는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샌프란시스코 미션 베이 Mission Bay에 건설 중인 우버의 새 본사 입체 모형이 놓여 있었다(2019년 완공 예정인 우버의 새 본사는 샌프란시스코를 연고로 한 NBA 농구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Golden State Warriors의 새 경기장과 나란히 자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캘러닉의 자리는 우버 본사 4층 한쪽 끝에 놓인 개방형 탁자였다. 임원 사무실 특유의 고급스러운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캘러닉과 그의 과거 창업 경험, 그리고 우버에 대해 1년간 취재를 해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행동 요령을 갖고 있었다. 우선 유연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의 자발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캘러닉은 편안한 분위기를 선호했다. 한 달 전 중국에서 첫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캘러닉의 경력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 외에는 그날 대화 주제에 대해 아무런 사전 합의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몇 개 있다고 말했다. ‘내가 흔치 않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란 전제가 달려 있었다.

그는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캘러닉은 우버 직원들이 사업상 미팅을 위해 사용하는 방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 방에서 얘기해도 됩니다. 아마 제가 인터뷰 내내 방 안을 미친 듯이 왔다갔다하겠지만요. 아니면 같이 나가서 걷죠.”

꽉 막힌 공간 안에서 정보를 빼내려고 애쓸 것인지, 아니면 캘러닉을 그답게 만든 모습을 살펴볼지 고르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산책을 선택했다.

우버의 이야기가 곧 캘러닉의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캘러닉이 있음은 분명하다. 차를 사고 운전사를 고용하는 대신 프리랜서를 활용한다는 그의 통찰력 덕분에, 우버의 사업모델은 다소 흥미로운 수준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획기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었다. 캘러닉은 우버가 추진력을 얻어 샌프란시스코 밖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할 때부터 CEO를 맡았고, 어디에서나 존재감이 느껴지는 철권 통치형 경영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그 결과 현재 우버에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캘러닉의 타이밍은 완벽했다. 우버는 IT산업에 찾아온 새로운 물결의 특성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버는 모바일을 최우선에 놓고 있다. 아마도 아이폰이 없었다면 우버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업 초기부터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둔탁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패키지 판매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이었다면 그처럼 빨리 움직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버는 자사 기술을 다른 사람의 재산(자동차) 및 노동력과 영리하게 결합시킨 ‘기그 경제(gig economy) *역주: 직접고용 대신 필요할 때마다 개인사업자와 계약하는 방식’ 에서도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개인사업자에게 요금의 일부를 지불하는 이 방식을 이용하면 값비싼 직원복지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현재 우버의 풀타임 직원은 1만 2,000명 이상이다. 그 중 절반 정도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Bay Area에서 근무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구름 없는 7월 밤도 스산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이다. 둘 다 겉옷을 챙겨 나왔기 때문에,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갈 것이라 짐작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캘러닉은 먼저 우버 본사를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만났던 다른 CEO들처럼, 캘러닉은 사무 공간이 회사의 가치와 비전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성도 담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그가 사망하기 6개월 전, 나는 캘리포니아주 팰로 앨토 Palo Alto에 위치한 자택 거실에서 잡스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새 애플 본사의 건축 도면집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잡스는 몇 달 후 본사에 심을 살구나무를 고르기 위해 원예 전문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생전에 완공을 보지는 못했다.

캘러닉은 “무(無)에서 도시를 만들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에 선이 그어진다. 도시를 새로 만드는 셈이다. 바로 이게 ‘깔끔한 선(clean lines)’이라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의 5대 축은 기반성, 대중성, 아이디어 고취, 고도의 진화, 상승성이다. 이게 바로 우버의 개성이다.”

우리는 캘러닉의 책상 옆에 서서 건물 중앙관리소를 내다보았다. 방문자가 보안검색을 통과하면 여러 개의 책상이 몇 줄씩 늘어서 있는 이 곳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캘러닉은 기반성, 대중성, 아이디어 고취, 고도의 진화, 상승성이 5대 ‘축’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캘러닉이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뒤죽박죽이었다.

‘기반성’은 대체로 ‘실용성’을 뜻했다. 기술을 통해 한 사람을 특정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주는 만큼 우버는 실용성의 극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엔지니어의 아들인 캘러닉의 말에선 이 개념이 새로운 의미를 가졌다. 캘러닉은 “기반성이란 음악의 조성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기능을 갖춘 직선들 전체를 뜻한다. 모든 회의실 이름은 도시 이름에서 가져왔고, 알파벳 순이다. 굉장히 실용적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캘러닉에게 자질구레한 세부사항에 시간을 쏟아 붓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다. 그가 신경 쓸 게 매우 많은 프로젝트에서 신비롭고 초월적인 측면을 찾아내 푹 빠져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캘러닉은 우버의 ‘상승’적 특성의 사례로 회의실 천장의 음향차단시설을 꼽았다. 그는 고요함을 무척 중시했다. “나는 소리를 싫어한다. 소음이 많으면 일이 안 된다.” 그는 방음의 비결인 건축자재 K-13을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이 층에 800명이 있어도, 차단 장치가 시끄럽지 않도록 환경을 유지해 준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말해도 된다.” 그는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들리니까.”

근처에는 책상과 내부 벽 사이로 복도가 하나 있었다. 캘러닉은 콘크리트로 된 아래층을 보라고 권했다. 서로 교차하는 일련의 선과 정교한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전력망이 여길 지난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걸 ‘길(path)’이라고 부른다.” 그가 근무 시간 동안, 수없이 왕복하며 자주 전화를 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낮에는 보통 여기에 있다”며 “일주일에 72km씩 걷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견학은 4층으로 이어졌다. 캘러닉과 나는 우버가 이 곳 마켓 스트리트 Market Street로 이전하기 직전, 총 12억 달러의 투자 계약을 맺은 ‘뉴욕 시’ 회의실로 들어섰다. 캘러닉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첫 번째 10억

달러 급 계약이었다”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곧이어 1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건물 내에 엘리베이터는 많지 않았다). 캘러닉이 조성한 그 곳은 창업 회사의 대체적인 환경을 모방한 듯, 노출 벽과 비교적 작은 책상으로 꾸며져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캘러닉은 “마크 저커버그가 아닌 이상, 창업자 중 최소 99%는 힘든 시기를 겪게 마련”이라며 “그래서 나는 이 곳을 ‘동굴’이라 부른다. 어둠 속을 헤매는 힘든 시기가 왔을 땐, 말 그대로 어두운 곳에 있는 것이다. 이 곳은 비유적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5층으로 내려오니, SF소설에서 이름을 따 온 회의실들이 있었다. 남북전쟁 마니아가 중요한 전투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 듯, 캘러닉도 SF 고전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한 구역의 이름은 아이작 애시모브 Isaac Asimov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다음 구역은 ‘마션’, 그 다음은 ‘엔더의 게임 Ender’s Game‘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SF가 ‘고도의 진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대체로 미래를 의미했다. 우버는 미래에 집착하는 회사다. 나머지 공간은 이탈리아 식 광장을 연상시키는 중심 공간이었다. 인근 통로는 일부러 길을 헛갈리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캘러닉은 방향 감각을 잃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었다. “거주자는 모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는 대중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반대로 손님은 길을 잃는 사람이다. 누가 거주자고 누가 손님인지 그걸로 파악할 수 있다.”










Ⅱ.

그렇게 결국 건물 구경이 끝났다. 우리는 캘러닉의 책상 근처 비밀 출구와 계단을 거쳐 밖으로 빠져 나왔다. 우버 사무실 입구가 있는 거리 모퉁이에 출구가 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인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내려가 해안도로인 엠바카데로 Embarcadero *역주: 샌프란시스코 동부 해안 지역 및 도로명 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 후의 계획은 관광지인 피셔맨스 워프 Fisherman’s Wharf 광장을 지나 금문교로 가는 코스를 걷는 것이었다. 석양은 아름다웠지만, 공기가 점점 쌀쌀해졌다.

뼛속까지 LA 사람인 캘러닉은 이를 참지 못했다. 그는 “LA 출신이 제일 못 참는 게 이런 상황”이라며 “이래서 나는 가끔 주말에 LA로 간다. 그냥 해변에 있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캘러닉은 사색에 잠기곤 했다. 산책을 계속하며 그는 온갖 주제에 관해 말을 이어나갔다. 예컨대 나는 트위터의 창립자 잭 도시 Jack Dorsey가 이끄는 모바일 결제업체 스퀘어 Square의 소식이 요즘 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퀘어와 우버는 같은 건물에 입주 중이었다. 비상장기업인 우버와 달리 스퀘어는 상장기업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피하고 있었다. 캘러닉은 이에 대해 “우리에겐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캘러닉이 이전에 세운 벤처기업들에 관해 대화를 시작했다. 2000년대 초, 그는 P2P 파일공유 서비스인 레드 스워시 Red Swoosh의 투자자 모집을 위해 절박하게 노력한 적이 있다.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 우리는 베이 브리지 Bay Bridge와 금문교를 잇는 구불구불한 수변도로인 엠바카데로에 도착했다. 나는 우리가 산책하는 동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외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 그렇진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피셔맨스 워프를 빠져나온 후, 우리는 인앤아웃 버거 In-N-Out Burger 매장에 들렀다. 캘러닉이 좋아하는 이 버거 체인은 캘리포니아 식 패스트푸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무렵 우리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캘러닉은 대형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날 저녁 총 9.6km에 달하는 이 산책로를 걸을 때마다 인앤아웃에 들르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또, 평소 함께 산책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훗날 나는 그 산책 친구가 앤서니 러번다우스키 Anthony Levandowski라는 걸 알게 됐다. 구글의 무인주행차 개발자였던 러번다우스키는 자율주행트럭 벤처인 오토 Otto를 창업했다. 우리가 산책한 뒤 몇 주 후, 우버는 6억 8,000만 달러에 오토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캘러닉은 내게 러번다우스키와 함께 걸으며 기술과 자율주행차 비전에 대한 사업플랜을 전수받았다고 밝혔다(구글의 모기업 알파벳과 우버는 현재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우버를 침몰시킬지도 모를 암초들’ 기사를 참조하라.)

캘러닉의 벤처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규모가 커지고 기반도 잡힌 현재의 우버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의 말에선 회사를 대기업으로 보는 걸 꺼리는 태도가 느껴졌다. 비록 더 이상 모든 직원을 알진 못하지만, 캘러닉은 여전히 유망한 지원자들과 몇 시간씩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새로 사람을 뽑기 전에 그 사람과 일하면 어떤 느낌이 들지 미리 그림을 그려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기분이 어떻냐고 묻자 그는 “내가 일하는 방식으론 회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하루 하루를 일련의 문제 해결 과정으로 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건 그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자신을 우버 CEO이자 ‘최고문제해결책임자(troubleshooter-in-chief)’라고 여기는 것이 확실했다.

분명 크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는 “작은 회사라는 느낌을 받고 싶다는 충동이 꾸준히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작은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절차와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혁신과 속도가 유지된다. 그러나 회사 크기에 따라 이를 달성하는 방법은 달라진다. 아주 작은 회사에선 ‘조직 내 지식(tribal knowledge)’만으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면 이런 지식이 대혼란을 야기해 오히려 엄청나게 느려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질서와 혼돈 사이의 선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우버는 더 이상 일이 인생의 전부인 젊은 미혼자들로 구성된 벤처기업이 아니다. 캘러닉에게 벤처 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획이 있냐고 묻자, 그는 “최대 속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동차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최대 속도라는 한계가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운전자는 차를 최대 속도까지 몰아붙이면서 엔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 속도를 무한정 넘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최대 속도는 있는 법이다.”

그는 직원들의 아이(Uber babies)가 이미 많은 상황이라며, 부모가 된 직원의 업무효율성이 시간적 제약이 없는 무자녀 직원보다 높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일과 삶 양립에 대한 캘러닉의 목표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산량이 많은 사람이 더 빠르게 승진할 것이다. 그건 원칙이고,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Ⅲ.

3시간 넘게 걷고 나니, 춥고 어두운 밤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대화는 굉장히 개인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는 우버가 언론의 총아에서 악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서술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캘러닉은 수 차례 직접 악역을 맡아 논란에 불을 지피는 등, 기꺼이 공범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오만함에 젖어 자극적인 발언을 한 사소한 순간들”이라 평가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신경 쓰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며 약간의 후회를 드러냈다. “우버에 도움될 게 없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내가 소통하려 한 대상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다.” 방어적인 태도나 짜증을 숨기는 재능이 없어 보인다는 게 캘러닉의 한 가지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무례한 행동을 “맹렬하게 진실을 탐구한” 탓으로 돌렸다.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는 공감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고 가차없는 비판으로 대응했다. 그만이 그런 건 아니다.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Jeff Bezos 외에도 캘러닉과 동시대 인물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Elon Musk도 이런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캘러닉도 이를 알고 있다. 그는 ‘창업자 CEO가 성공하려면 성격이 더러워야 한다’는 인터넷 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고정관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그런 농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농담에서 자기 자신으로 화제를 돌렸다. “분명 그 질문이 있을 것 같은데, ‘캘러닉은 정말 나쁜 놈인가?’ 말이다. 나와 인터뷰를 한 이상, ‘캘러닉은 정말 나쁜 놈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게 중요하다.”

엔지니어답게 캘러닉은 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이지 사실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내가 하지도 않은 뭔가에 관계된 사람들의 특정 사안을 내가 자극했다는 것? 아니면 내가 나쁜 놈인지 확인하는 것? 기꺼이 하겠다.”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나쁜 놈이라곤 생각 안한다. 상당한 확신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신경을 쓰는지 궁금했다. “진실을 원하는 성격은 진실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뭔가가 진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계속 찾고 싶어진다. 그게 내 성격이다.”

캘러닉이 원하는 버전의 진실을 들을 날이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책 인터뷰로부터 몇 주 후, ‘뉴욕 매거진 New York Magazine’이 규제 관련 분쟁에서 우버와 여러 차례 일했던 정치 컨설턴트 브래들리 터스크 Bradley Tusk의 인터뷰를 실었다. 터스크는 이유가 옳다면 ‘얼마간의 비판’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본인을 캘러닉에 비유했다. 그는 “캘러닉은 아주 큰 일을 이루려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캘러닉이 ‘나쁜 놈’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터스크는 이렇게 반응했다. 그는 “우리 얘기가 오프 더 레코드냐”고 묻더니 망설였다.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니, 그는 나쁜놈이 아니다.”

올해 초, 캘러닉이 한 운전기사에게 화를 내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번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상으로 ‘나쁜 놈’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캘러닉은 이 사건으로 자신이 더욱 ‘성장’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이제 막 40대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젊은 치기였다는 핑계는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산책이 계속되자 캘러닉은 추위와 피곤함을 느꼈다. 그는 내게 30분 정도 더 걸어야 하는 금문교까지 계속 갈지, 아니면 차를 불러 우버 사무실로 돌아갈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나도 춥고 피곤했지만, 선택권을 그에게 넘겼다. “차를 타시죠.” 그가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우버를 켰다. 우버의 모든 운전 기사는 요금을 지불하는 승객의 (성을 제외한) 이름을 받는다. 우리를 태운 기사는 몇 분간 대화를 듣고 난 후, 자신이 태운 승객이 우버 CEO ‘트래비스’라는 걸 알아차렸다.




기사: 캘러닉 씨 맞죠?
캘러닉: 맞아요. 반갑습니다.
기사: 실물로 뵙긴 처음이네요.
캘러닉: 네, 네.
기사: 요즘 어떠세요?
캘러닉: 잘 지냅니다. 잘 지내요.
기사: 세상에나. 못 믿을 일이 일어났네요
캘러닉: 저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기사: 백미러를 봤거든요. 얼굴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와, CEO가 내 차에 탈 줄이야.
캘러닉: 만나서 반갑습니다.
기사: 별 말씀을요.
캘러닉: 우버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기사: 1년, 한 1년 2개월 정도.
캘러닉: 전에는 뭐 하셨습니까?
기사: 파트타임으로 일했죠. 샌프란시스코에 사니까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요.
캘러닉: 그랬군요.
기사: 직장에서 해고돼 전업 기사가 됐어요.




기사는 16년간 AT&T의 기술지원 부서에서 일했지만 최근 해고됐다고 말했다. 캘러닉은 우버 기사로 전업한 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신이 났는지’ 물었다. 기사는 근무 시간이 유연한 건 좋지만, 소득 측면에선 아쉽기도 하다고 답했다. 캘러닉이 우버 기사에게 추가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사는 “우버의 기술지원 서비스는 솔직히 별로”라고 털어놓았다. 캘러닉은 ”맞는 말이죠, 저도 노력 중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몇 달쯤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우버의 인센티브 제도인 최소 시간 보장제에 대해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못 받아보고 있다고 불평을 했다. 이 제도는 우버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사들이 기대고 있는 주요 수단 중 하나다. 그는 기사들이 우버의 규정을 어떻게 위반하는지에 대해서도 귀띔을 해주었다. 외진 교외지역 같은 비선호 목적지를 피하기 위해, 손님을 골라 받는 기사가 많다는 것 등이었다.

시계가 거의 11시를 가리킬 무렵, 우리는 차에서 내려 몇 시간 전 출발했던 우버 본사 옆 문에 도착했다. 캘러닉은 이 기사의 건의 사항에 대해 나중에 확인해 주겠다고 약속했다(오후 11시 7분, 나는 캘러닉으로부터 내부 이메일 한 건을 전달받았다. 시카고의 한 ‘커뮤니티영업 담당 선임매니저’가 이 건의에 대해 확인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훗날 나는 캘러닉에게 “내가 그 차에 없었더라도 그렇게 행동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기사들로부터 받는 피드백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의 양은 엄청나다”며 “그 때마다 우버 제품 매니저들은 ‘아이고, 또 시작이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Ⅳ.

우버는 지난해 8월 중국법인을 현지 토종 라이벌 업체인 디디 Didi에 매각했다. 캘러닉이 가장 큰 미래 시장이라 추켜세웠던 중국에서의 패배를 인정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건 그의 경력에서 가장 뼈아픈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상황이 다소 미묘하다. 우버는 당시 중국에서 연 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 중이었다. 그러나 매각으로 우버는 디디의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디디는 우버 이사회에 합류할 수 있었다. 매각 결정이 캘러닉이 거둔 최대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이유다.

20억 달러 손실을 본 투자가 떠오르는 중국 독점기업에 대한 60억 달러 상당의 지분으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우버의 현금보유고를 끝없이 빨아들이던 블랙홀도 사라졌다. 이 때 개선된 재무 상황은 훗날 미국 주식시장 상장 때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우버의 거대한 야망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제품담당 최고 임원 제프 홀든 Jeff Holden은 우버의 비행 자동차 연구에 대해 99쪽 분량의 백서를 발간했다. 그는 이 연구를 ‘우버 상승(Uber Elevate)’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이 백서는 ‘평균 이동 시간이 2시간에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머리나 Marina 지역에서 새너제이 San Jose시 중심가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라는 말로 시작한다. 보고서는 지상에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자동차 네트워크 및 관련 인프라 건설이라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정교한 농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버는 이 보고서에서 ‘시장성에 대한 장애물’에 관해 자세한 분석도 시도했다. 나사와 조지아 공대, MIT 소속 과학자들이 보고서를 작성한 17인의 작성자 및 평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우버는 올해 초 나사에서 30년간 근무한 마크 무어 Mark Moore를 항공엔지니어링 총괄 책임자로 영입하기도 했다. 단점이 무엇이든, 우버는 문자 그대로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가려 하고 있다.

캘러닉은 사실만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엉뚱한 아이디어일수록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걸 그 무엇보다 더 좋아한다. 작년 여름, 나는 베이징에서 캘러닉을 비롯한 우버 임원 몇 사람과 함께 전용기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상하이 인근의 항구도시 항저우로 가는 비행기였다. 항저우는 알리바바의 탄생지이자 중국 IT산업의 주요 허브다.

캘러닉은 이륙 전, 협상 및 투자 유치 총괄인 에밀 마이클 Emil Michael에게 투자은행의 도움 없이 우버를 상장시키는 게 가능한지 물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마이클은 역(逆)인수를 제안했다. 비상장기업이 자기보다 규모가 작은 상장기업을 인수해 우회상장하는 이 기법은 다소 의심을 살만한 부분이 있었다. 캘러닉은 투자은행에게 수수료로 지급하는 ‘공모자금 3%’를 아껴서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돈을 기사들에게 주는 건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하자, 캘러닉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동종업계 벤처기업인 주노 Juno처럼 기사들에게 지분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검토한 결과, 증권법과 관련해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행이 시작되자, 캘러닉은 깊은 사색에 잠겼다. 분위기는 밝았다. 그는 캄보디아 독재정권인 크메르 루주 Khmer Rouge에 대한 연작 르포를 읽은 후, 오랫동안 탐사 전문 기자가 되는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의감에 어울리는 ‘꿈의 직업’이라면서, 개인적인 탐사보도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나와 같이 6개월간 인도 뭄바이 슬럼가에 머물면서 그 경험에 대해 써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머리를 기르고, 현지 사회에 동화되도록 옷도 갈아 입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캘러닉의 즐거워하는 모습과 가장 솔직한 면모가 그 때 일부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크메르 루주의 잔인성에 신음하는 캄보디아인이나 뭄바이 슬럼가 주민의 고통에는 충격을 받았을지 몰라도, 캘러닉은 자신이 사는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에 대해선 지금까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짜릿했지만 동시에 당황스러웠다. 호화로운 비행기 안에서 그는 도전을 맘껏 즐겼다.

일련의 인터뷰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나는 미국의 첫 국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에 대해 말을 꺼냈다. 해밀턴을 소재로 한 린-마누엘 미란다 Lin-Manuel Miranda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두기 한참 전부터 캘러닉이 이 인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캘러닉은 론 처노우 Ron Chernow의 해밀턴 평전을 읽은 후 왜 해밀턴을 존경하게 된 것일까?

캘러닉은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해밀턴은 그 시대의 창업자였다. 회사가 아닌 한 국가를 창업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는 건국의 중심에 있었다. 해밀턴이 없었다면 미국은 지금과 많이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해밀턴은 철학자인 동시에 행동파였다. 비범한 자질도 많았다. 해밀턴이 그렸던 미래의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그의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했다. 그의 비전이 없었다면, 미국은 지금처럼 훌륭한 나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해밀턴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하는 성격이라 적이 많았다. 캘러닉이 부당한 대우를 수없이 당하고 또 그것을 견뎌냈다는 점에서 자신과 해밀턴을 동일시했던 건 아닐까? 캘러닉은 이렇게 답했다. “글쎄, 해밀턴은 수많은 역경을 겪었다. 우리 우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옳은 것을 위해 싸우고, 못된 짓을 하지말자’고 자주 말한다. 해밀턴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남들과 아주 다른 행동을 하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나쁜 놈이라 부르지만, 본인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캘러닉이 반대 목소리에 익숙해지는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그에게 역경은 이미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 글은 지난 5월 23일 발간된 애덤 래신스키의 신간 ‘거침없는 질주: 세계정복을 향한 우버의 여정 속으로’에서 발췌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TRAVIS KALAN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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