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이 핸드백에 흥미를 잃으면서, 코치는 3년전 급격한 매출 하락을 목도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코치는 CEO 빅토르 루이스 Victor Luis의 지휘 아래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업체가 어떻게 경영난을 극복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가죽 재킷 가격이 3,500 달러면 저렴하게 나온 편’이라는 말은 평소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이 말은 바로 코치의 CEO 빅토르 루이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요즘 뜨는 럭셔리 브랜드 로다테 Rodarte와의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자랑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백 개의 작은 황동 리벳 *역주: 머리가 둥글고 두툼한 버섯모양의 둥근 못들이 꽃 무늬 문양으로 달린 장식 을 어루만지면서 장인 정신에 감탄했다. 루이스는 “이 장식들은 손으로 직접 칠하고 자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정도면 유럽에선 오트 쿠튀르 haute couture *역주: 최신 유행의 고급 맞춤옷 라고 불릴 만 하다. 그런데 가격은 고작 3,500달러라니, 거저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3,500 달러면 제 아무리 명품 소매 브랜드 코치라 해도 꽤 비싼 편이다. 미국에서 코치의 인기 핸드백 판매가는 평균 325달러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죽 재킷은 코치에겐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제품이다. 명품 브랜드로 재도약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인 셈이다.
CEO 루이스는 주변 환경을 통해서도 이런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코치의 신규 플래그십 스토어 ‘코치 하우스’는 3층 높이에 2만 제곱 피트(약 560평) 규모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이 매장은 글로벌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들이 줄지어 들어서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발렌티노 Valentino, 구찌 Gucci, 해리 윈스턴 Harry Winston 매장과도 매우 가깝다. 코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코치 백 400개로 만든 약 4m 크기의 익살맞은 공룡 마스코트 렉시 Rexy가 전시되어 있다.
루이스는 매장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모노그램 *역주: 두 개 이상의 글자를합쳐 한 글자 모양으로 도안화한 글자 으로 장식된 계산대와 벽면에 전시된 1940년대 코치 클래식 백을 즐거운 표정으로 자랑을 했다. 매장 디자인 중 그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코치 로고(말이 마차를 끄는 모습)가 모자이크로 표현된 엘리베이터 바닥이다. 그는 “늘 코치의 탄생과 전성기를 매장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루이스의 이런 감정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올해 50세인 그는 2014년 코치 CEO로 부임한 이후, 일반 소매기업 CEO들이 쉽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왔다: 그는 코치의 과거 성공사례를 활용해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코치의 시장 점유율은 3년 전 가파르게 추락했다. 세일 행사로 사업을 확장하자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했고 고객들도 떠나갔다. 루이스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20세기 당시 코치의 품격 있는 이미지를 회복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사업 규모를 축소했다. 그리고 강소기업으로 회사를 재정립하면서, 대량으로 상품을 찍어내는 대신 품질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코치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3,500달러짜리 재킷은 ‘양보다 질’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 Stuart Vevers는 고가 의류 시장에서 코치의 입지를 재정비하는 작업을 맡았다. 코치 의류제품을 자연스럽게 고가에 판매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더 과감한 움직임은 질보다 양에서 두드러진다. 코치는 2014년 이후 매장 수십 곳을 폐쇄했고, 온라인 깜짝 세일 대부분도 중단했다. 백화점 매장 수백 곳에서도 철수했다. 매출 타격은 불가피했다.
이런 전략 탓에 판매는 급감했다. 코치의 북미 매출은 2014~2015 회계연도에 두 자리 수 하락을 기록했다. 회사 주가는 여전히 2012년 수준에서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하지만 극약처방의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코치의 북미 매출은 4분기 연속 성장세를 기록했다. 총 매출은 최근 2년 연속 상승해 2017년엔 45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유통 컨설팅업체인 커스토머 그로스 파트너스 Customer Growth Partners의 대표 크레이그 존슨 Craig Johnson도 “2~3년 전에 비해 코치의 경영 건전성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코치는 소비자에게 더 이상 큰 폭의 할인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매업체에겐 꿈 같은 얘기다. 몇 주전 코치는 오랜 경쟁업체 케이트 스페이드 Kate Spade를 24억 달러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인수는 코치의 부활 스토리를 더욱 돋보이게 한 소식이었다.
물론 루이스의 승리를 선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시티그룹의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코치의 ‘회복세’를 언급하며 조롱 섞인 논평을 내놓았다. 그는 코치의 북미 지역 매출이 과거 최고치에 비해 여전히 30%나 낮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코치 매출 대부분은 할인 폭이 큰 아울렛 매장에서 나오고 있다. 핸드백 제품에 대한 의존도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핸드백 매출 성장률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케이트 스페이드 인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이유다. 이번 인수는 코치가 아직 건재하다는 선언이자 회사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고 과감한 결정이었다. 루이스는 코치가 미국의 첫 명품 액세서리 대기업 브랜드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그는 글로벌 명품 그룹인 LVMH, 커링 Kering, 리치몬트 Richemont보단 규모가 작지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미국판 브랜드를 구상하고 있다. 이 대기업들의 상품 라인업에는 가죽 제품 외에도 신발과 고가 의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코치가 ‘종합 브랜드 그룹’으로 진화한다면, 단일 제품과 단일 브랜드에 대한 의존성을 크게 줄여 향후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
코치는 1941년 뉴욕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수수한 공방으로 시작했다. 코치가 명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특별히 고급스럽지 않은 미국인들의 취향 덕분이었다. 1960년대 초반 코치는 야구 글러브에 쓰이는 단단하고 내구성 좋은 가죽으로 지갑을 만들기 시작했다(코치가 재고 처분용 가죽을 헐값에 공급업자에게 구했다는 설도 있다). 코치 제품들은 외야수 글러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부드럽고 연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코치는 품질로 명성을 얻었고 단골도 확보할 수 있었다. 1961년에는 보니 캐신 Bonnie Cashin을 영입해 여성복 라인을 출시하며 급성장했다. 캐신은 오늘날 코치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브랜드 이름이 들어간 작은 행태그 hangtag *역주: 가방 장식 와 돌려서 여는 잠금 장치 였다.
그 후 코치 지갑과 머니 클립, 가방은 대학 졸업이나 취업을 축하하는 대표 선물이 되었다. 코치는 당시 CEO 루 프랭크퍼트 Lew Frankfort의 지휘 아래 30년 넘게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합리적 가격의 명품을 원하는 시장에서 잠재성을 발견했다. 프랭크퍼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를 언급하며 “그들은 비싸지만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도도하다면 우리는 친근하게 다가간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경쟁업체들은 코치를 ‘맥도널드 럭셔리’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 덕분에 코치는 틈새 시장을 노리던 기업에서 업계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프랭크퍼트의 재임 기간 동안, 코치의 총 매출은 1979년 600만 달러에서 800배 이상 성장해 2013년에는 50억 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코치의 공격적인 확장에는 대가가 따랐다.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브랜드는 집중력과 명성을 잃었다. 세계 경제가 2008년 대침체기에 들어가자, 프랭크퍼트는 매장 확장에 열을 올렸다. 저가 제품을 확대해 저렴한 소재의 가방을 출시했고, 코치의 C 로고를 넣은 제품 라인을 더 많이 추가했다. 공장형 아울렛에도 집중했다. 코치가 아울렛 매출액을 공개한 적은 없지만, 월 스트리트 분석업체들은 2013년 기준 아울렛 매출이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UBS 은행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비네띠 Michael Binetti는 이에 대해 “회사가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대침체기 직후 코치 매출의 절반 이상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200~300 달러 대 핸드백 라인에서 발생했다.
그래도 성장만 계속한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최고 전성기는 2011년이었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Euro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코치는 그 해 미국 핸드백 시장에서 29.2%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코어스 Michael Kors, 토리 버치 Tory Burch, 케이트 스페이드 같은 신흥 브랜드가 코치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이클 코어스는 꽤 공격적인 라이벌이었다. 쇼핑몰 수십 곳에서 코치 매장 바로 옆에 매장을 열어 손님을 끌어 모으고, 저가 전략으로 코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더 나빴던 건 코치가 브랜드 고유의 독특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2014년 코치 임원들은 직원들에게 마이클 코어스, 케이트 스페이드, 코치 로고를 가린 매장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떤 브랜드 매장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실망스럽게도 직원 다수가 브랜드를 구별하지 못했다. 고객들도 점점 코치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코치를 싸구려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코치의 핸드백 시장 점유율은 12% 포인트 하락했고, 그 틈을 타 마이클 코어스가 1위로 치고 올라갔다. 비네띠는 “쇼핑몰을 한번만 둘러봐도 시장 점유율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대이탈을 막는 게 빅토르 루이스의 임무였다.
명품 사업은 상미겔 Sao Miguel 섬 주민들에겐 딴 나라 얘기였다. 루이스가 태어난 이 섬은 포르투갈 아조레스 Azores 군도 중 한 곳으로 주로 빈곤층이 살고 있다. 미국에 살던 그의 친척들은 어린 루이스에게 옷가지와 리글리 Wrigley 껌을 보내주곤 했다. 뉴욕 허드슨 야드 Hudson Yards *역주: 맨해튼의 새로운 부동산 명소 로 떠오르고 있는 맨해튼의 한 지역이 내려다 보이는 그의 사무실에는 지금도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리글리 껌으로 채워진 유리 그릇이 놓여있다.
루이스는 일곱 살이던 197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 로드 아일랜드 이스트 프로비던스 East Providence에 정착했다. 부모는 제조업에 종사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는 매사추세츠 우스터 Worcester에 위치한 홀리크로스 대학교(College of the Holy Cross)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다. 그후 영국 더럼 대학교(Durham University) 로터리 재단 장학생으로 국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학자가 될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본인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탓에 명품 사업은 나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명품 시장이 오히려 루이스를 찾아냈다. 그는 영국에서 한 포르투갈 출신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포르투갈산 코르크, 와인, 크리스털 제품을 일본에 유통시키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1991년 그 친구 회사에 입사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프랑스 명품 대기업 LVMH가 소유한 주류 브랜드 모엣 헤네시 Moet Hennessy의 일본 지사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근무를 했다. 이후 그는 LVMH 산하 고급 패션 브랜드 지방시 Givenchy의 일본 지사 CEO로 활동하면서, 패션 소매업계에 데뷔했다. 프랑스 크리스털 명품 브랜드 바카라 Baccarat의 북미 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동료들은 이렇듯 먼 길을 돌아온 경력 덕분에 루이스가 ‘창의적 아이디어’와 ‘현장 스킬’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인재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프랭크퍼트는 루이스가 “고급과 저급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루이스는 또 가족 비즈니스 중심인 유럽 초대형 브랜드에선 고위급 승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미국 명품 기업에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2006년 그는 코치 일본 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곧 글로벌 사업 책임자로 승진을 했다. 2013년에는 부사장에 임명돼 사장을 맡을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초 프랭크 퍼트의 뒤를 이어 CEO 자리에 올랐다.
그 무렵 코치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은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있었다. 당시 회사는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새로운 매장 디자인을 선보였고, 의류와 신발 라인에 더 집중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좀 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6월 그는 북미 지역 70여 개 매장(전체의 20%)의 폐점을 발표했다. 위치 좋은 부지를 선점하는 데 입점 예산을 집중시키고, 매장 외관을 더 세련되게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코치는 또 아울렛 온라인 판매 행사를 줄였다(월 13회에서 현재는 2~3회로 축소했다). 공장형 아울렛 매장에도 상품 라인을 보강했다. 이후 코치는 다수의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백화점 내 유동 인구 감소와 큰 폭의 할인율이 브랜드 명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코치는 현재 북미에 222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아울렛 제외). 5년 전만 해도 북미 매장은 354곳에 달했다. 매장이 줄면 매출도 함께 감소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매장을 줄이기 전에도 이미 매출은 급감하고 있었다. 루이스가 폐점 계획을 처음 발표했던 날, 코치 주가는 9% 하락했다. 그럼에도 루이스와 그의 팀은 월가를 향해 “8분기 정도 지나면 북미 지역 매출이 회복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소매업계에서 8분기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루이스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했고, 애널리스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일로 루이스와 코치 브랜드는 투자업계에서 상당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루이스의 예측이 적중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전략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출도를 줄이는 전략을 구사해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시켰다. UBS가 최근 핸드백 쇼핑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는 코치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품질 측면에서 케이트 스페이드와 마이클 코어스보다 코치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 결과 고객 인지도만큼이나 제품 가격도 달라졌다. 북미에서 판매된 코치 핸드백 중 400달러 이상인 제품의 비중이 최근 분기 기준 전체의 55%로 나타났다. 2년 전에는 이 비중이 30%에 불과했다.
가치지향 시대에 이런 수치는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초 소위 가방 붐이 일었던 시기에, 여성들은 일 년에 몇 개씩 핸드백을 구입해 옷장을 채우곤 했다. 시장조사기관 NPD 그룹의 소매업계 선임 애널리스트 마셜 코헨 Marshal Cohen은 이에 대해 “브랜드 고유의 멋을 살린 시그니처백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코치가 그 대세 브랜드에 종종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 Saks Fifth Avenue 백화점 최고마케팅책임자 출신으로 현재 사모펀드 임원인 론 프라시 Ron Frasch는 “코치에 대한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소문은 더 이상 코치의 저가 제품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는 컬렉션을 구상할 때, 코치만의 고유한 감성을 느끼기 위해 본사 9층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온 처리된 이 곳 코치 백 전시관에는 수십 년 역사를 지닌 2만 8,000개의 코치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이 중에는 유나이티드 항공 승무원 전용 가방인 ‘스튜디어스 백’(1981년 모델)도 있다. 가죽 소재로 위에 항공사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1968년 보니 캐신이 디자인한 ‘홀스터 Holster’ 백도 전시돼 있다. 홀스터 백은 매드맨 Mad Men *역주: 19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의 한 장면에 등장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고전적인 디자인을 담고 있다. 베버스는 코치 컬렉션을 언급하며 ”역사가 있기에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버스는 영국인임에도 미국식 럭셔리의 매력에 빠져있다. 미국 스타일의 럭셔리는 유럽이 중시하는 격식보다 젊음과 독특한 매력을 강조한다. 베버스는 코치에 합류하기 전 5년 동안 미국 철도 암트랙 Amtrak을 타고 자주 여행을 다녔다(그는 운전 면허증이 없다). 그는 미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빈티지 매장에 들렀다. 그는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코치 컬렉션을 연구한 셈”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연구는 꽤나 효과가 있었다. 루이스와 프랭크퍼트가 2013년 LVMH의 유럽 패션 브랜드 로에베 Loewe에서 일하던 베버스를 영입했다. 베버스는 야구 점퍼를 모티브로 한 컬렉션 스케치로 코치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주말 햄튼 Hamptons에 있는 프랭크퍼트 자택에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2000년 대 후반 코치는 오트 쿠튀르 시장 진입을 잠깐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리드 크라코프 Reed Krakoff의 이름을 딴 컬렉션이었다. 그는 코치의 대중화 전략을 설계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오트 쿠튀르 시도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그 후 베버스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는 뉴욕 패션 위크의 작은 쇼부터 시동을 걸었다. 2015년 그는 2016 봄 시즌 코치의 첫 런웨이 쇼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 결과 패션 미디어의 극찬이 쏟아졌다. 베버스는 당시 리뷰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던 동료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올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주최하는 의상연구소 갈라쇼(Costume Institute gala)에서 코치의 새 광고 모델인 배우 셀레나 고메스 Selena Gomez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는 베버스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코치가 유례 없이 이브닝 드레스 분야에 도전장을 던진 이례적인 순간이었다.
코치는 또 좀 더 캐주얼한 의류 라인을 앞세워 패셔니스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꽃무늬 드레스, 양가죽 재킷 등이 좋은 예이다. 코치는 지난 2월 열린 2017년 가을 시즌 뉴욕 패션 위크에서 새 컬렉션을 선보였다. 베버스는 빈티지 자동차, 체리 패턴이 프린트 된 가죽 소재 닥터 백 doctor bag *원래 의사용으로 만든 가방으로, 단단한 손잡이와 금속제 열쇠가 달린 검은 가죽 백 을 선보이며 ‘발칙한 일탈’을 꾀했다. 베버스는 필자에게 ”명품의 개념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류는 코치의 매출 구조에서 여전히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오트 쿠튀르 의상의 비중은 훨씬 더 작다. 그럼에도 코치 브랜드에서 의류가 갖는 영향력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선다. UBS의 애널리스트 비네띠는 “코치 의류 라인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코치의 모든 상품 라인이 돋보일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베버스는 “나는 사람들이 코치의 가죽 재킷을 입을 때 ‘멋지다’는 느낌을 갖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코치에게 높은 판매가를 책정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루이스는 CEO 취임 1년을 맞은 2015년, 명품 신발 브랜드 스튜어트 와이츠먼 Stuart Weitzman을 5억 7,400 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계약을 통해 코치는 즉각적으로 신발 시장에서 중요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전략 역시 향후 핸드백 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진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한 ‘보험장치’였다.
유럽의 명품 브랜드 대부분은 대기업 소속이다. LVMH는 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과 루이뷔통 Louis Vuitton을 소유하고 있다. 커링은 생 로랑 Saint Laurent과 구찌 Gucci를, 리치몬트는 몽블랑 Montblanc과 까르띠에 Cartier를 갖고 있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독립 상장 기업이다. 티퍼니 Tiffany & Co., 랠프 로런 Ralph Lauren, 마이클 코어스, 코치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베인 앤드 컴퍼니 Bain & Co.의 미국 소매업 총괄 애런 체리스 Aaron Cheris에 따르면, 상당수 대기업 주식은 현재 저평가되어 있다. 경영 다각화가 주식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월가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은 계열사 브랜드가 경영난을 겪을 때,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하는 대신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체리스는 ”투자자들은 브랜드 회생이 필요할 때,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며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럽과 미국식 경영 스타일을 모두 경험해 본 루이스는 유럽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는 “복수의 브랜드를 운영하면 각 브랜드에 대해 바람직한 장기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단기적인 위기가 왔을 때 미봉책을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코치는 인수한 브랜드에 여러 혜택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코치에서 임원으로 오래 근무한 토드 칸 Todd Kahn은 무질서하기로 유명한 패션업계에 대해 “전통적으로 성급하게 대처해 왔다”고 지적했다. 반면 코치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비효율을 신속하게 개선해 좋은 경영 평점을 받고 있다.
코치가 보유한 부동산도 이상적인 사업파트너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명세는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패션 브랜드가 좋은 부지에 매장을 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물론 코치의 협업 브랜드가 되려면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코치가 패션과 명품 트렌드를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한 때 코치가 다른 곳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회사 경영진은 코치가 인수 대상이 아닌, 인수 주체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냈다. 올해 4월 코치는 뉴욕 명품 백화점 베르도프 굿맨 Bergdorf Goodman의 전 사장 조슈아 슐먼 Joshua Schulman을 영입했다. 그는 코치가 6월부터 새로 시작하는 브랜드의 CEO를 맡게 된다. 그건 주식회사 코치가 지주회사 역할에 집중해 조직을 개편한다는 분명한 신호탄이었다. 일각에선 코치가 버버리, 케이트 스페이드, 신발 브랜드 지미 추 Jimmy Choo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코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는 케이트 스페이드였다. 얼핏 보기에는 케이트 스페이드 인수로 코치의 상품 라인이 크게 다양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버버리를 인수했다면 모를까, 케이트 스페이드도 핸드백으로 유명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트 스페이드는 규모는 작아도 신발, 의류 라인이 잘 갖춰져 있다. 게다가 루이스가 지적했듯, 케이트 스페이드의 주 고객은 젊은 층이다. 실제로 구매 고객의 60%가 밀레니얼 세대 *역주:98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 다. 코치의 경우는 이 비율이 50% 미만이었다. 이번 인수로 코치는 마이클 코어스와 경쟁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현재 마이클 코어스는 과도한 확장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인수로 코치의 현금 보유액 19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고갈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인수 규모는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케이트 스페이드 인수를 발표한 날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인수가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명품 대기업을 만들 수 있는 첫 걸음”이라고 설명했다.
루이스는 프랭크퍼트가 구상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명품’ 콘셉트를 더욱 발전시켜 ‘현대적 명품(modern luxury)’ 전략을 내놓았다. LVMH나 커링과는 달리, 코치는 최상급 명품에 집중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현대적’이라는 의미는 배타적이지 않고 가까이하기 쉬운 브랜드를 뜻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외적 상징으로만 인식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소수의 고객만이 살 수 있는 고가 제품, 다시 말해 배타적인 명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코치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 뿐만 아니라 외부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골드만삭스(오랫동안 코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최근 이 회사 주가에 대한 평가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코치 주가는 2015년 9월 이후 50% 이상 상승해 S&P 500 지수보다 2배 가량 올랐다. 케이트 스페이드 인수 소식이 공개된 다음 날, 코치 주가는 5% 더 상승했다. 추가적인 대형 인수가 없더라도, 이 핸드백 브랜드는 유럽과 중국-이미 6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에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루이스는 패션과 명품업계만큼 변덕스러운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멀티 브랜드’에 대한 미래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면, 핸드백 부문이 침체돼도 코치의 다른 브랜드가 대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브랜드 하나로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키려 할 때, 브랜드 고유의 독특함을 잃게 된다”고 역설했다. 그건 코치가 다시는 밟지 않으려는 전철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PHIL WAH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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