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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미FTA 폐기 가능]'치킨게임'으로 역공 나선 트럼프...한국, 수세 극복할 카드 있나

사인하면 우리 의사 상관없이 6개월뒤 협상 자동종료

안보이슈까지 겹쳐 쌀·서비스시장 개방 공세 거셀듯

"美 의회·재계 반발 심해 결정 쉽지 않을 것"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시에 위치한 셰널트 국제공항에서 에어포스원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허리케인 피해 지역을 둘러본 뒤 기자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와 관련해 다음주 참모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혀 한미동맹 균열 우려를 고조시켰다. /레이크찰스=AP연합뉴스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던 한국과 미국 양국의 줄다리기 양상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공동조사 없이는 개정 협상도 없다”던 우리 정부의 강수에 미국 측도 협정문 ‘폐기(withdrawal)’로 맞불을 놓았다. 한미 FTA의 성과에 대한 양국 간 인식차이를 좁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통상당국의 노림수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우리 통상당국이 떠밀려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수세적 입장을 벗어나야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서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미국의 맞불은 사실상 예고돼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현지시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horrible)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7월의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지금 한미 FTA 재협상을 하고 있다. 아주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트위터를 날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한미 FTA를 재협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다.

문제는 지난달 22일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개정 협상 요청을 했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개정 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만 남았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을 독단적으로 결정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협의 절차만 거치고 행정부가 결정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헌법상 통상협정 체결 권한이 의회에 있다.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신속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무역촉진권한(TPA)’을 위임받아 실무협상에 나선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통상권한이 미국 의회에 있지만 TPA를 통해 양자 무역협정 폐기는 행정부가 할 수 있도록 위임해 놓았고, 한미 FTA도 이행법률안을 통해 그렇게 돼 있다”고 해석했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결정할 경우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한미 FTA는 자동 종료된다. 한미 FTA 협정문 24조5항도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돼 있다.



미 의회의 ‘승인’ 혹은 ‘합의’ 없이는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는 이행법률을 통해 협정문이 모두 국내법에 반영이 돼 있는데 폐기를 하기 되면 그 법안들도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결국 의회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라며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다음 주 의회에 공식 레터를 보내는 등의 ‘보여주기식’ 압박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상당국은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해나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국익과 국격을 위해 당당하게 한미 FTA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고 지금도 그 입장 그대로”라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하게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정 협상은 시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미국이 쥔 공격 카드가 많은 상황에서 개정 협상마저 수세적 입장에서 시작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북핵 문제가 고조되면서 안보 문제가 협상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또 오는 10월 미 재무부가 발표하는 환율보고서를 비롯해 무역적자보고서, 철강 안보영향보고서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우리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쌀 개방과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의 문제를 걸고넘어질 가능성도 크다.

반면 우리 정부는 공격과 방어 카드가 마땅치 않다. 그나마 2012년 시행된 통상절차법이 어느 정도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한미 교역의 고질적 문제인 반덤핑과 문재인 정부 철학에 맞춰 협정문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요구 등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안 교수는 “한미 FTA 초기 협상 당시에도 미국 측이 난색을 표해 반덤핑 문제를 협정문에 담지 않고 작업반으로만 남겨뒀다는 점 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빨리 통상조직 정비를 마쳐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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