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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간 돌고 돈 기업지배구조 규제

60년대 지주회사 금지하다 총수지분 분산→상호출자 제한

97년 순환출자 금지하더니 지주회사 권고→요건강화 회귀







공정거래위원회가 낡은 규제를 융통성 없게 적용하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가 등장하게 된 배경 역시 결국은 정부의 규제 탓인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또 다른 규제의 잣대만 들이대는 것 자체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를 전문화된 정보기술(IT) 업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또 동일인(총수)에 대한 기준도 아직까지 애매한 채 유지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경쟁을 제한하는 독과점을 막는 것보다 기업들의 지배구조 규제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현재 재벌의 지배구조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형적으로 형성된 측면이 큰 데 모든 책임을 기업들에 돌리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2014년에 도입된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는 과도한 규제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순환출자로 인해 가공자본이 형성돼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아진다고 보지만 순환출자는 어느 나라든 존재하는 기업결합의 한 유형이다. 더욱이 순환출자는 지주회사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지배구조 체계다. 박정희 정부 때 지주회사를 금지하자 재벌들은 사업지주회사 체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1972년에 ‘기업공개촉진법’을 도입한 뒤 총수 가족 지분을 5% 이내로 분산할 것을 요구했다. 국내 기업들이 일본처럼 상호출자를 많이 이용하자 1987년부터는 상호출자를 제한했다. 재벌들이 순환출자로 옮겨간 배경이다.

뒤늦게 정부는 순환출자를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을 제시했다. 1960년대로 회귀한 셈이다. 정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주회사 전환이 활발하자 이번에는 지분 강화를 규제로 내세웠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 기준을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주회사의 요건 강화는 기업으로서는 또 다른 부담일 수밖에 없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를 줄여 경쟁을 촉진하는 게 주된 역할인데 유독 한국 정부만 시장 규모가 크다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규제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면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986년에 도입한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역시 업종별 전문화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벤처·IT 기업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기업집단지정제도는 재벌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등의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위가 도입한 것”이라며 “그동안 대기업집단의 지정 기준만 조정됐을 뿐 기존 재벌기업 중심의 프레임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법이 도입된 1980년대에는 제조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고 대기업과 하도급 업체들의 갑을관계가 고착화됐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핵심 부품에 대한 독점권 등을 나눠 가지는 등의 불공정행위로 재산을 증식했다. 당시에는 관리해야 할 기업집단을 정부가 선정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통해 재벌들의 전횡을 막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IT 플랫폼 산업에서는 원청과 하청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과거 자본과 설비 투자를 통해 가능했던 소위 ‘일감 몰아주기’가 발생하기 어렵지만 공정위의 법 적용은 변함이 없다.

동일인을 지정하는 기준은 아직도 모호한 채로 유지돼 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1일 공정위는 출자·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31개 그룹을 지정하면서 롯데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재판에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신격호 총괄회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인 신동빈 회장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공정위는 ‘소유지배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해진 창업자(전 이사회 의장)를 동일인으로 지정할 때는 실질적 영향력을 높게 평가한 것과 비교하면 기준이 제멋대로인 셈이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년 된 기업집단 규제를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 지민구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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