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공개 예정이었던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 발표가 오는 10월로 미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로드맵의 핵심인 ‘공공 일자리 81만개 창출계획’이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취업자가 1년 새 반토막 나는 등 고용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핵심공약마저 흔들리면서 일자리 정책 전반의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일자리위원회와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 발표시점을 9월에서 10월 추석 이후로 연기했다. 일자리 로드맵은 당초 8월에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9월로 미뤄졌고 이번에 다시 한번 연기됐다.
발표가 연기된 1차적 이유는 “로드맵 발표를 주재할 대통령의 9월 일정이 여의치 않아서”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자 로드맵 1순위 과제인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확충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부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 증원 17만4,000명, 공공 부문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 34만2,000명, 간접고용 근로자의 직접고용 전환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30만명 등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발표할 로드맵에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담길 예정이다. 그런데 막상 청사진을 만들다 보니 목표를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일자리 34만개를 만들어야 하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경우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이라는 공공기관을 새로 만들어 민간근로자를 공공영역으로 대폭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보육·요양 등 분야의 민간업체들이 “왜 우리 근로자를 정부가 빼가느냐”고 반발했다. 사회서비스 분야 업체들 중 중소·영세업체 혹은 사회적 기업이 많아 정부의 중소기업 보호·육성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이에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공공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확충계획 34만명을 채우기가 힘들어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회서비스에서도 일자리 규모가 가장 큰 보육 분야 관계자들의 반발이 특히 심해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고용 전환, 근로시간 단축 부문 등을 맡은 기재부와 고용부도 고민이 많다. 직접고용 전환의 경우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마찬가지로 민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가 있고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관련법의 국회 처리 자체가 불투명하다. 근로시간단축법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추진했지만 노동자와 재계, 여당과 야당 간 이견이 커 매번 통과가 무산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더라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실제 신규 근로자가 늘어날지, 늘어난다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 17만명 증원 목표의 경우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 소요가 워낙 커 벌써부터 비판이 많은 상황이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5년간 공무원을 17만명 늘릴 경우 향후 30년 동안 약 240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는 “공공 일자리 81만개 확충은 애초에 무리한 공약이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일자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공공 부문 일자리 확충 계획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핵심공약인 만큼 최대한 목표를 맞추도록 노력할 것이고 로드맵 발표 때도 81만개 숫자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약을 지키는 데 집착하다 보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 81만개를 만든다는 목표는 애초에 무리한 측면이 있었고 이 숫자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 보면 각종 부작용과 사회 갈등만 더 커질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정책목표를 현실적 숫자로 조정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지적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공공 부문에 무게중심이 쏠린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조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은 “공공 부문이 일자리 창출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금처럼 공공 부문 일자리를 무리하게 늘리려다 보면 시장왜곡 등 역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결국 시장에서 나오기 때문에 산업경쟁력 강화, 신산업 육성 등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에 무게를 더 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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