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원 규모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2기에 이어 17조원짜리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사업에 대한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한때 유력 후보였던 우리나라의 수주 가능성이 희박해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일본 등 경쟁국들은 정상들까지 나서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벌이는 반면 우리 정부는 상당히 소극적으로만 지원하는 데 그치면서 업계는 “기댈 곳이 없다”고 진단하는 상황이다. 10조~20조원 프로젝트는 워낙 리스크가 커 정부의 사업보증과 금융지원 등이 맞물리지 않으면 수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오는 10월 22조6,500억원(200억달러)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2기를 발주한다. 또 12월 말에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17조원(150억달러) 규모의 고속철 사업 수주전이 시작된다.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가 이어지면서 화색이 돌아야 할 업계는 표정이 어둡다. 사우디 원전은 문재인 정부 들어 속도를 내고 있는 ‘탈원전’ 정책으로 힘을 받기 어려워졌고 지난 2013년부터 눈독을 들여온 말-싱 고속철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범부처 차원의 논의가 열리지도 못했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금리 1% 내외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며 말-싱 고속철 수주 사업을 측면 지원하고 나섰다. 원전의 경우도 신흥강국 러시아와 중국이 가격경쟁력 등을 앞세워 수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때도 막판까지 경쟁업체들과 여론전을 폈는데 우리의 탈원전 정책은 큰 약점이 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정부가 원전 수출에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18일 진행될 사우디 측과의 설명회 겸 면담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추진해야 가능한 사업이지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수주전에 나서는 업계에 전폭적으로 금융을 지원하고 외교적 차원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김영필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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