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양국의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2차 회의가 오는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에서 열린다. “공동조사 없이는 개정 협상도 없다”던 우리 정부의 강수에 미국 측도 협정문 ‘폐기(withdrawal)’로 맞불을 놓은 상황. 여기에 철강 안보영향 보고서에 우리나라가 중국 등과 함께 전면 과세 대상이 ‘그룹2’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측의 개정협상 개시를 위한 공격카드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일단 우리 통상교섭본부는 협상단을 꾸려 3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출국 전까지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등 협상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정 폐기’ 발언이 엄포가 아닌 실질적 위협으로 확인되면서 협상단의 부담이 더 커진 상태다. 이번 2차 협상에서는 공동조사와 개정 협상을 병행해 진행할지, 또 개정이 필요하다면 그 시기와 목적, 범위 등은 어떻게 둘지 양국 협상단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달 27일 미국을 방문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워싱턴 정가의 유력 인사를 만나는 등 이번 회의를 대비한 통상외교를 펼친 바 있다. 방미 기간 김 본부장은 “(미국의 폐기 위협이 실제적이며) 블러핑(엄포)이 아니더라도 우리 통상팀은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이런 기조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개정 협상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본부장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분하고 굳건하게 대응하겠다. 미국의 FTA 폐기 압박과 개정 요구에도 국익 극대화 및 이익균형 원칙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발동한 행정명령의 일환으로 작성된 철강 안보영향보고서에 국산 철강제품을 전면 과세 대상인 ‘그룹2’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발동되면 270일 안에 상무부는 수입제품이 미국의 안보와 산업, 경제 후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해야 한다. 상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철강 수입국을 △관세 면제(그룹1) △전면 관세 부과 (그룹2) △관세 면제 및 수입 제한(그룹3) 등 3개로 나눴다. 이 가운데 미국의 3위 철강 수입국인 한국은 중국·베트남과 함께 전면 관세 부과 대상인 그룹2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미국이 가장 많은 철강을 수입하는 유럽연합(EU)과 2위 수입국 캐나다, 4위 멕시코 등은 그룹1에 포함돼 기존대로 관세를 면제받는다.
이로 인한 100%가 넘는 ‘관세 폭탄’이 당장 연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주요 공격카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자국 산업 무역구제조치 일정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3일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진행하는 태양광 전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사의 2차 공청회가 열린다. 미 국제무역위는 지난달 22일 한국산을 비롯한 수입 태양광 전지의 급격한 증가로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봤다고 판정했다. 국제무역위는 공청회를 거친 뒤 다음 단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입 관세 부과·인상, 수입량 제한, 저율관세할당(TRQ·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 등 구제조치를 권고하게 된다.
추석 다음 날인 10월 5일에는 국제무역위가 한국산을 포함해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으로 미국 관련 산업이 피해를 봤는지 여부를 판정한다. 미국으로 세탁기를 수출하는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두 곳으로, 지난해 삼성·엘지전자의 세탁기 대미 수출액은 약 13억3,000만달러로 추정된다. 피해 판정이 내려지면 삼성·엘지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0월 발표가 예정된 미국 재무부의 하반기 환율보고서도 미국 측의 공격카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심층분석 대상국’에 포함돼 있다.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공동조사 없이는 개정협상도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협상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일단 미국 측의 요구대로 개정을 선언한 뒤 시간을 두고 공동조사를 벌인 뒤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덕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도 개정 협상을 바로 시작한다더라도 나프타 개정협상과 한미 FTA 개정협상을 동시에 진행하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일단 개정 협상을 시작하되 우리 측이 요구한 공동조사를 선행한 뒤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하는 방식의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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