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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20년來 최악 경제환경-97년과 비교] "경제·안보 동시다발 리스크...정부, 심각성 그때만큼 모른다"

<환란 겪은 관료들의 진단>

'기아차 트리거' 재연...가계·정부 부채는 증가

외환보유액 크게 늘었지만 기업 대응력 떨어져

정치적 구호 넘쳐나고 文정부는 과거에만 몰두

구조개혁·외교안보 전략적 대응체계 구축 절실





지난 1997년 10월2일, 미국 정부는 자동차 시장 개방 문제로 우리나라에 ‘슈퍼 301조’를 발동했다.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해 12월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미국의 통상압력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잇단 내우외환에 한국 경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정확히 20년 뒤인 올해 10월 미국은 통상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시작이 비슷하다. 그런데 상황은 20년 전보다 좋지 않다. 북핵 문제에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 보복과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 불투명,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20개국(G20)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11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를 만나 우리 경제상황과 대응능력을 설명할 예정이다.

환란을 겪은 경제관료들의 시각도 비슷했다. 물론 3,848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은 1997년(204억달러)과 비교가 안 된다. 국가 신용등급도 영국·프랑스와 같은 ‘AA’다. 20년 전에는 투기등급 수준인 ‘B+’에 불과했다. 200%로 제한해야만 했던 대기업 부채도 현재는 높은 내부유보금이 문제가 될 정도다. 수치로만 본 경제의 기초체력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된다는 게 경제관료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에 비해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관료는 “문재인 정부가 그 정도 경각심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북핵 위기라면서도 적폐청산을 이유로 국방부가 광주 민주화 문제를 캐고 있으니 정부만 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용로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도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지금도 그때만큼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업 대응력이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와 반도체·전자와 같은 제조업 수출 덕이었다. 원화 약세로 수출에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다시 경제의 안전판을 쌓았다.



그러나 지금은 반도체를 빼면 이 같은 경쟁력조차 약해졌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이슈에 법인세 인상, 노동개혁 후퇴,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운 사정 국면이 기업들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통상압력이 겹쳐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사면초가다. 실제 올해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을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1997년 기아차 사태의 데자뷔로 보는 이들도 있다.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20년 전에는 외환보유액이 낮았다”며 “문제는 요새는 그때보다 기업들의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핵과 사드 문제를 둘러싼 외교안보의 문제가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직 금융위원장은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경제적인 펀더멘털이나 구조의 문제는 현재가 훨씬 낫다”면서도 “문제는 외교안보적인 어려움으로 전략도, 사람도 없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2의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윤 전 부위원장은 “20년 전처럼 외환유동성이 부족할 가능성은 적지만 어떤 이슈로 외국인 투자가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제2의 방어선인 통화스와프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도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늘리고 경상수지와 재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고 전직 장관 역시 “외환보유액을 더 쌓기보다는 통화스와프 같은 끈을 잡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으로는 구조개혁과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방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전직 관료들은 봤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구조개혁과 일부 산업 구조조정을 못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며 “IMF 때와 달리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안보와 경제, 동시다발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윤 전 부위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북핵 문제로 힘든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의 통상압력을 이겨내려면 서비스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개혁이나 창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파이를 키우는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관료는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것, 새로운 수요를 찾아 자꾸 나가야 한다”며 “지금 통상 문제가 되는 것들은 미국 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것들인데 반도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경우의 수를 놓고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정치가 깨지더라도 경제적 흐름을 갖고 일본 등과도 방어기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모든 경우를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외환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방어기제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영필·임진혁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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