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9일 조달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2012년~2017년 8월 부정당업체의 제재 기간 중 공공사업 계약 사항’을 분석한 결과 입찰 제한 기업들의 계약 규모가 이같이 집계됐다고 밝혔다.
조달청에 따르면 공공 조달 과정에서 각종 비리·비위 행위가 적발된 부정당 업체는 최대 2년간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 받는다. 제재 대상 비리는 입찰 가격 인하 등을 위한 담합,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 불공정 하도급 거래, 입찰 서류 조작 등이다.
하지만 지난 5년여간 166곳의 부정당 업체가 입찰 제한 제재 기간에도 총 611건, 19조3,419억원 규모의 공공사업 계약을 따냈다. 166곳 부정당 업체의 비리 유형을 보면 제재 건수의 35.7%가 담합으로 가장 많았고 뇌물 공여도 24.7%에 이르렀다. 상당수 기업이 무거운 죄질의 비리로 제재를 받았다는 얘기다. 일례로 대형건설사 A사 등 5곳 기업은 담합 행위로 3개월에서 1년까지 입찰 자격이 정지됐음에도 제재 기간 2,000억원 상당의 소방 방재 교육 연구단지 건립 공사 사업을 따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입찰 제한을 당한 기업들이 법원 결정을 통해 제재 효력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는 ‘가처분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조달청에 따르면 2012~2017년 상반기 부정당 업체가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은 365건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315건(86.3%)에서 인용 결정이 나왔다.
문제는 부정당 업체에 대한 제재 대부분은 결국 정당한 것으로 판명된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부정당 업체 제재의 정당성 여부를 다툰 본안 소송 216건 가운데 181건(83.8%)에서 ‘정부 결정이 옳았다’는 확정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재 정지가 유지되기 때문에 3년 이상이 걸리는 소송 기간에 기업들은 자유롭게 공공사업을 따낼 수 있다.
소송 중 정부 행정제재에 대한 특별사면이라도 이뤄지면 기업들은 제재 족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2000년대 들어 건설업체에 대한 행정제재 감면만 네 번 이뤄졌는데 2015년에는 무려 2,008곳의 건설사가 감면 혜택을 누렸다.
박 의원은 “소송 여력이 되는 큰 기업들은 가처분을 신청해 3~4년 동안 버티다가 특별사면으로 처분을 면제 받는 식으로 입찰 제한 제재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며 “부정당 업체에 대한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안으로는 ‘임시발주제한 제도’ 도입 등이 거론된다. 김민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 등 선진국은 뇌물 등 무거운 비리를 저지른 경우 법적 절차 중에도 입찰 제한 제재가 유효한 임시발주제한 제도를 운영 중인데 국내에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늦게나마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조달청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을 통해 제재가 정지된 부정당 업체가 입찰에 참가할 때 감점과 같은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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