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한·미 공동 ‘파이로프로세싱’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가 미국 측의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유승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구갑)은 12일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를 위해 사용후핵연료 반입이 필요하지만 연구현장인 미국 아이다호주는 반입이 금지된 곳으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현지에 투자한 369억원이 적지 않게 낭비됐다고 주장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에서 핵분열을 하지 않은 플루토늄이 포함된 부분을 고속로라는 새로운 원자로 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20분의 1까지 줄이기 위한 핵연료주기 공동연구(JFCS, Joint Fuel Cycle Studies)를 위해 양측은 2011년부터 10년간 파이로의 기술성·경제성·핵비확산성 평가 차원에서 총 1,250억의 연구비를 절반씩 분담하기로 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369억원을 집행한데 이어 내년부터 3년간 245억원(달러당 1,200원 가정)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유 의원은 “사용후핵연료 반입이 금지된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사용후핵연료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마치 열대에서 빙하 연구를 하는 것과 같다”며 “연구원들이 1인당 연 3억원(인건비와 파견비 각 1억5,000만원)씩 호화스러운 파견생활을 누려왔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총 6,891억 규모의 파이로프로세싱 프로젝트 자체가 비리덩어리라며 전반적 조사를 주장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daho National Laboratory)가 위치한 아이다호주는 사용후핵연료 반입이 2016년까지 금지됐던 곳이다. 아이다호주는 필 뱃(Phil Batt) 주지사와 앤드루스(Andrus) 전 주지사가 1991년에 이미 반입된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확실히 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상업용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는 것. 유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실증실험을 위해 사용된 사용후핵연료 반출입 자료를 요청했으나 반출입 자료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이다호주는 경수로 사용후핵연료가 아닌 MOX(혼합산화물)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하다는 게 유 의원의 설명이다.
따라서 우리 측이 369억원을 들여 7년간 진행 중인 한미 공동연구 과정은 결국 미국 측의 이익만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 측에 도움이 되는 연구는 2018년 하반기부터 진행하겠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계획이라고 유 의원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측은 “현재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혼합산화물 사용후 핵연료(4kg)를 사용하여 조사시험용 금속핵연료 제조를 위한 U/TRU를 회수하는 공정을 수행하고 있다”며 “파이로 전체공정 실증을 위한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는 내년 8월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로 반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와 원자력연구원 측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지원에 관해 연말까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결론을 내기로 했으며, 만약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개발이 중단되면 기존 사용후핵연료 1만5,000톤과 앞으로 나올 2만여톤의 사용후핵연료를 땅에 묻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유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新한미원자력협정에서는 파이로 실증시설 건설이 아니라 타당성 입증까지만 동의가 됐고 핵비확산성 기능은 증명되지 않았다”며 “처분장 효과나 안전성 입증도 논란이 있고 관계부처와의 협의도 미진하나 비용은 천문학적인 사업에 ‘묻지마 베팅’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파이로프로세싱 사업은 건설비만 3조 6,000억원이 소요되나 여의도 크기의 부지 매입비, 추가연구비, 지자체 지원금 등 각종 사회적 비용과 건설 이후 운영비까지 포함하면 17조~27조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유 의원의 분석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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