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
왈종미술관 현관문을 지긋이 밀면 맑은 풍경소리가 울리며 그 끝에 매달린 철판 속 글귀가 관객을 맞는다. 따뜻하고 넉넉한 할아버지 말투로 이왈종 화백이 말했다. “그럴 수 있고, 그럴 수도 있죠. 제가 평소 잘 쓰는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제 작품을 함께 보자는 제안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지난 2013년 6월 제주도 서귀포시 동흥동 정방폭포 바로 옆에 개관한 왈종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백자 찻잔 형태다. 바닥면적 100평에 3층, 총 300평을 오가는 관객 동선을 고려해 구석구석 교묘하게 공간을 뚫은 모양이 가야 토기도 생각나게 한다. 이 화백이 직접 건물을 디자인했다. “내 그림을 보여줄 곳이라 나름 공을 들였고 건축가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아예 백자 도자기로 구워 보여주면서 설득했죠.”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스위스 출신 건축가 다비드 머큘로와 한만원 한도시건축 소장이 함께 작업한 결과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이 됐다.
미술관 내부에는 이왈종의 대표작인 그림부터 손수 깎은 목조각, 제주의 화산암으로 만든 돌조각, 한지로 만든 부조판화 등 그의 작품 전반이 펼쳐진다. 꽃과 새·노루·강아지와 사람이 어우러진 특유의 작품과 골프장 그림도 인기지만 ‘19금(禁)’이 내걸린 춘화 전시장도 뜨겁다. 날렵한 그의 필력은 뒤엉킨 인물 표현에서 빛을 발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이름 붙은 그의 춘화 화첩에는 18폭의 그림이 들어 있다. “여색을 조심해야 한다”며 껄껄 웃는 노화가의 뒤쪽으로 이들 ‘낯뜨거운 그림들’을 바라보는 맞은편 벽에 이 화백이 그린 부인 초상화가 걸려 있다.
미술관 1층에는 어린이 미술교육실이 마련돼 있다.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직접 미술교육을 해온 지 15년이 됐다. 2층에 상설전시장이 있고 3층에는 작업실과 명상실, 작품을 이용한 테라스 포토존도 조성했다. “옥상정원이 최고입니다. 조각작품뿐 아니라 제주도 남쪽 바다의 섶섬·문섬·새섬이 한눈에 보이죠. 찻잔 닮은 미술관에 물과 바람과 예술을 다 담은 셈입니다.”
미술관 별채의 아트숍에서는 약 200여종의 아트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인기 상품인 오프셋 판화로 얻은 수익금 1억5,000만원을 유니세프에 기탁해 이 화백은 ‘유니세프 아너스클럽’의 일원이 됐다.
/제주=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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