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A 대형건설사는 4,000억원대 응암동 재개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890명의 조합원에 총 87억원을 살포했다. 불법 비자금은 외부용역(OS)업체에 용역비를 지급한 것으로 위장송금했다가 이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마련했다. 매표행위 덕에 A사는 시공사로 선정됐지만 결국 이 사실이 들통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까지 넘겨졌다. 그러나 A사가 받은 처벌은 벌금 5,000만원에 그쳤다. 이 건설사는 이후 다른 건설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다시 시공사로 선정됐고 이 재개발 아파트 단지는 올해 일반분양을 앞두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사회 곳곳의 투명성이 제고됐지만 여전히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수주전이 혼탁한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사실상 주도하는 건설사들이 OS업체 등을 내세워 조합원에 대한 금품·향응 등을 일삼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받는 처벌은 최고가 벌금 5,000만원선이다.
건설사들의 주택사업영업이익은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조짜리 공사에 1,000억원 이상의 이윤이 남기 때문에 수십·수백억을 뿌리고 벌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남는 장사인 셈이다.
이 때문에 혼탁한 재건축·재개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매표 행위를 한 건설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라고 건설 업계에서조차 입을 모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불법 영업을 감시하기 위한 인력 충원 및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합 스스로 불법 영업을 자진 신고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하고 불법을 발견하면 지금보다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 당국 역시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달 중 조합원 매표 행위를 한 시공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공권 박탈과 재건축·재개발사업 입찰 참여 제한 등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담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OS회사의 금품 및 향응 제공, 상대사에 대한 거짓 비방 등에 대한 건설사의 연대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최근 “홍보대행사의 행위에 대해서도 자동적으로 건설사의 포괄적 책임을 묻도록 하는 등 제도를 보완 및 강화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금품을 받는 조합원이 자진 신고를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현재는 금품 수수자들도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기 때문에 금품을 수수한 조합원들이 자진 신고를 꺼리고 있다. 현재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신고 실적이 저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년 2월 시행되는 개정 도정법에 따르면 자진 신고자에 대해 감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적극적인 신고포상제 운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GS건설이 한신 4지구에서 운영한 자신신고센터에서 총 25건에 달하는 접수가 이뤄졌던 데는 신고금액의 10배에 달하는 포상을 하겠다는 회사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동영 의원실 관계자는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일반인으로 구성된 조합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각종 업체들이 개입하면서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며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진·한동훈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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