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공급자·공익대표 위원 동수
정부안 관철 유리하고 책임 불명확
여당 의원들, 가입자대표 늘리고
회의록 작성·공개 등 투명성 강화
보험료율 의결권 등 이양도 추진
한해 6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운영과 정책 심의·의결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가입자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양승조(보건복지위원장)·남인숙·권미혁 의원 등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의 구성을 바꾸고 회의록을 공개하는 내용 등을 담은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했거나 다음달에 제출한다.
건정심은 의료서비스·의약품·치료재료 등의 건강보험 가격(수가·酬價)과 가입자 보험료율, 건강보험 제반 정책과 재정운영에 관한 심의·의결권을 갖고 있다. 한해 6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진료비와 5,000만명이 넘는 건강보험 적용인구가 영향권 아래에 있어 그 결정에 따라 가입자는 물론이고 의료계와 제약·의료기기 업계의 희비가 교차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달리 회의자료와 위원 등의 발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차관을 뺀 위원도 가입자·공급자·공익이 각 8명씩으로 구성돼 있어 3분의 1만이 가입자를 대표한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위원 선정에 깊이 관여하고 차관이 실질적인 캐스팅보드를 갖는 등 정부에 권력이 편향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남 의원은 “건강보험의 보장성·공공성·투명성과 국민적 신뢰를 높이려면 건정심 위원 구성을 바꾸고 보험료율을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 산하 재정위원회에서 넘기는 등 건강보험 거버넌스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건정심과 재정운영위 회의록 공개 의무화 등을 담은 건보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장도 “가입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민주적 건강보험 거버넌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지난 4월 건강보험의 운영방향 설정에 가입자인 일반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의 ‘건강보험 옴부즈만’을 설치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찬진 변호사(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는 “건정심에 집중된 권한 일부를 건보공단 재정운영위로 넘기고 건정심 위원 중 가입자 대표 확대, 위원들에게 안건발의권·자료제출요구권을 주고 회의록 작성·공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정심 회의와 요양급여기준, 상대가치점수를 포함한 요양급여비용을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5개 전문위원회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등의 회의록 공개 필요성도 주장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건강보험 급여 등을 논의하는 복지부 산하 5개 전문평가위도 가입자대표 위원은 10% 이하”라며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도 선진국처럼 이해관계자·처방권자·계약당사자 등을 배제하고 가입자·공익대표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도 “건정심에 건강보험 의사결정의 과도한 권한이 부여돼 정부가 정책안을 관철시키기 유리한 반면 정책결정의 책임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보험료 심의·의결, 중장기 재정전망에 대한 심의 권한을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 재정위원회로 넘기고 국회가 재정운영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측은 “지금의 건정심 구조는 2002년 의약분업 등에 따른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회논의를 거쳐 건강보험 수입과 지출을 한 곳에서 관리해야겠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며 “현실에 맞지 않거나 운영상 투명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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