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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실험...'최첨단 공학 집합체'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 막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위 권고안 의미

건설 중단 땐 2~3년내 밸류체인 무너져

200만개 달하는 원전부품 기술력도 유지

"이젠 탈원전이 맞는지 전면 재논의 필요"





지난 1월 한국수력원자력은 현대중공업과 543억원 규모의 신고리 5·6호기용 비상디젤 발전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같은 달 LG전자에서 냉동기(93억원)를, 4월에는 ㈜효성과 468억원 상당의 800㎸ 가스절연모선을 구입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다. 올 들어서만 휴비스워터(336억원)와 ㈜무진기연(128억원), 정우산기(53억원) 등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한수원의 1·2·3차 협력업체가 1,700여개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로 숨통이 트인 업체는 더 많다. 7월 공사 중단 전까지 신고리 5·6호기 공사에는 기자재 업체까지 약 760여곳이 참여했고 5만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이번 공사 재개 결정이 원전 산업 밸류체인을 지켜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이 나오지 않았으면 국내 원전업계의 생태계는 2~3년 내에 무너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 감소로 협력업체들이 고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19조1,000억원인 두산중공업의 수주 잔액은 신고리 5·6호기를 뺄 경우 17조5,000억원으로 8.3%나 감소한다. 부품업계의 원자력 관련 기술 및 노하우도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게 된다. 부품수급도 제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체코만 해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시 부품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시기의 문제일 뿐 최대 10년 안에 국내 원전 생태계가 무너질 것으로 봤다. 실제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2008년까지 30년 가까이 사실상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은 원전업계 생태계가 무너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 전력회사들도 원전을 운영해본 인력이 늘고 있어 고민하고 있다. 주코쿠전력만 해도 원자력 사업에 종사하는 직원이 600여명이지만 이 가운데 100명 정도는 원전 가동 중단 후 입사했다.

특히 원전은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밸류체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원전에 들어가는 부품 수만 200만개로 2만개 수준인 자동차의 100배가량 된다. 원전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를 안 짓게 되면 국내 업체들은 2~3년 내 공급망이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라며 “공사 재개 결정으로 원전 밸류체인을 지켜냈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밸류체인 붕괴는 원전 수출 무산으로 이어진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큰 손실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 자립도는 95%로 3세대 원전 ‘APR-1400’의 경우 건설단가가 우리나라는 ㎾당 1,556달러로 주요 경쟁국인 러시아(2,993달러)나 중국(1,763달러)보다 낮다. 영국과 체코는 2035년까지 각각 3GWe, 1GWe 규모의 원전건설을 추진 중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2.8GWe 크기의 원전을 세울 예정이다. 세 곳 모두 유력한 원전 수출처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는 최대 수십조원에 달하는 원전 수출을 이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우리나라는 해외 원전 수출을 하지 못했다”며 “큰 방향에서 탈원전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마저 건설이 안 됐다면 관련 업계와 종사자들에 미치는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되면서 울산의 에너지 융합 일반산업단지 조성과 원전산업 육성도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에너지 융합 산단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2,790억원을 들여 조성되는데 원자력과 에너지 관련 기업·연구시설 등이 입주한다. 산단 조성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만 2조82억원, 취업유발 효과는 2,800여명에 이른다. 원전 하나가 밸류체인뿐 아니라 지역경제와 산업 생태계까지 영향을 주는 셈이다. 전직 산업부 장관 출신 인사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해 국내 업체들이 일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탈원전이라는 방향이 맞는지 공론화든 심층조사든 전면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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