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4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구성원 13명 중 유일하게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일시중단에 반대했던 조성진 경성대 교수는 20일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결정이 발표된 직후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지속된다는 점에서는 안도했지만 정부가 앞으로 추진할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 것이다.
조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비중의 메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급격히 늘릴 계획인데 실행을 하다 보면 그 목표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가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전력수급관리의 메인으로 활용하기 힘들고 부지 확보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조 교수의 지적처럼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의 밑그림을 짜는 데 적잖은 진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당장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급브레이크를 밟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와 에너지 전환 정책을 별개의 문제로 구분해왔기 때문이다. 이날 공론조사에서도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의견은 59.5%로 ‘건설 중단(40.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향후 정부가 원전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축소가 53.2%로 유지(35.5%)와 확대(9.7%)를 넘어서 정부의 정책 방향에 힘을 실어줬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공론화 결과 전달식에서 “처음 약속대로 저희에게 주신 모든 권고를 수용하겠다”며 “신고리 5·6호기 재개뿐 아니라 원자력발전 축소, 원전 안전 기준 강화, 신재생에너지 비중 증가, 사용 후 핵연료 해결 방안 마련 등 에너지 정책에 관한 보완조치까지 권고사항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시민참여단의 공론조사 결과를 신고리 5·6호기 건설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다는 점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고 나가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시민참여단이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고리 5·6기 건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늘었다는 점은 정부가 에너지 밑그림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이었지만 공론조사의 결과에서 ‘건설 재개’가 우세했다는 점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시민참여단의 숙의기간이 더 길어진다면 원전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국민 공론조사를 통해 정부의 정책도 수정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일단 정부는 연말에 발표될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탈원전 방침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탈원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진다면 내년에 시행될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2019년에 나올 5차 신재생 기본계획과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짤 때 탈원전 기조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내년 3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탈원전 기조에 대해 공론화를 거칠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은 전기요금 부담이 어떻게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신재생과 가스 비중을 높일 때 시민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공론조사 결과로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기로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이 7년 연장된 점도 에너지 밑그림 변화에 중요한 요소다. 애초에는 2015년 10월 가동한 신고리원전 3호기의 수명이 다하는 2075년 10월이었지만 이제는 신고리 5·6호기의 수명이 다하는 2082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수급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 만큼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서서히 높여나가도 된다는 의미다.
원자력계에서는 이번 공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면 백지화가 계획됐던 천지 1·2호기, 신한울 1·2호기, 이름이 없는 원전 2기 등 총 6기에 대한 건설 추진과 2030년까지 수명을 다하는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연장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황주호 경희대 부총장은 “처음부터 에너지 비중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있고 신고리 5·6호기를 어떻게 할지 결정했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측면이 있다”며 “탈원전 자체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박효정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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