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보기술(IT) 교육업체 스마트스터디에 입사한 하지효(30) 씨는 ‘알바왕’으로 유명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전봇대에 붙어 있는 공고를 보고 연락해 광고 전단지를 돌린 게 첫 시작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우유와 신문도 배달했다. 세명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택배 물품 상·하차와 카페 바리스타부터 서바이벌 총싸움 레크레이션 강사, 마트 판매원에 이어 신림 사거리 4차선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 대수 세기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들과 소통한 경험은 채용 시장에서 정량적인 스펙보다 훨씬 든든한 무기가 됐다. 입사 후 국민캐릭터 ‘핑크퐁’ 관련 유아교육 전시회와 팝업스토어를 총괄하는 업무 부분에서도 독특한 경험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아르바이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생들과 호흡한다. 자연스럽게 터득한 관계 기술과 친화력으로 이미 유통업계 빅3인 신세계와 현대, 롯데 백화점에서 핑크퐁 팝업스토어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는 겨울에는 부산 센텀 신세계백화점에서도 팝업스토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 씨는 “그 당시에는 학자금도 갚고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나고 보니 지위나 조건이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관계를 쌓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어린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게 좋다”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신사업을 기획하고 신규 제휴처를 발굴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아이들이 열광하는 장난감 언박싱(unboxing) 프로그램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오선희(21) 캐리소프트 메인 PD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지난 2015년 9월 캐리소프트에 입사한 오PD는 장난감 선정부터 프로그램의 기획, 송출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서울 소재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방송 영상을 전공한 후 8월부터 취업을 준비하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영상 제작업체를 알아보다 만난 곳이 캐리소프트다.
연봉이나 복지, 근무환경보다도 일을 잘 배울 수 있고 재밌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우선적인 조건이었다. 캐리소프트는 오 PD가 딱 원하는 회사였다. 서브PD로 입사해 카메라 구도 잡기, 영상 편집, 포토샵 등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캐리와 장난감친구들 영상은 인기가 많아 시청자가 많다는 점이 좋은 기회였다. 그는 “영상을 제작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은 해봐야 알 수 있다”며 “직접 경험해보면서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들이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는 6개월간 중국 상하이에서 연수와 업무를 병행했다. 회사에서 중국 콘텐츠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하이에 해외 사무소를 연 것.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온다는 말이 맞았다. 오 PD는 “언젠가는 중국으로 콘텐츠 사업이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혹시 중국에 갈 기회가 온다면 내가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퇴근 후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학원에 다니며 중국어를 공부했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두 지원자의 사례처럼, 최근 채용 트렌드로 블라인드 채용, 이른바 ‘스펙 타파’가 떠오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200개 강소기업 인사팀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토익점수나 학점, 자격증 유무, 나이 등으로 합격 여부가 판가름 되지 않았다. 뽑고 싶은 신입사원은 따로 있었다.
입사 지원자들에게 가장 원하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자신감과 열정 △직무·산업이해도가 대다수의 답변을 차지했다. 서류 전형에서 뿐만 아니라 면접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본인이 하고 싶은 직무 조사와 해당 산업 공부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본인의 장점을 직무와 연결시켜 패기있게 서술한 자기소개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조언도 나왔다. 또 대기업 취업에 실패해서 중소기업에 지원서를 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교육 서비스 기업 A사 인사팀장은 “학점이나 학벌, 토익점수는 높았으나 대기업 취업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져서인지 면접을 보는 내내 기가 죽어있는 느낌을 주는 지원자가 있었다”며 “결국 객관적인 스펙은 낮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한 지원자가 합격했다”고 설명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 374명, 취업준비생 806명 등 총 1,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도입으로 면접전형이 보다 중요해지면서 지원자의 인성과 직무역량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인사담당자들은 예상되는 면접 과정 변화로 ‘개인의 인성, 자질, 성향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 증가(68.1%)’와 ‘직무 지식, 정보, 경험 등 직무 역량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 증가(59.4%)’를 꼽았다.
서류 변별력이 사라지면서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에 올라오는 지원자의 규모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인사담당자 60.4%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 이전보다 많은 인원이 면접 전형에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이성훈 사람인 인력관리(HR) 컨설팅센터 팀장은 “한국이 고도 성장기였을 때는 기업들이 사람을 대거 뽑으면서 모두 면접 볼 수 없으니 스펙이라고 불리는 정량평가를 시작했다”며 “‘직무’가 아닌 ‘회사’ 중심의 채용으로 인해 학생들이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학력과 어학성적을 올리는 방식으로 취업을 준비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팀장은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면서 점차 회사들은 직무에 대해 열정이 있고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직원을 뽑아 일을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느끼고 있다”며 “결국 취업준비생들도 직무 연관 채용의 맥락에서 접근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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