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잇따른 외풍에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중 관계 복원으로 휘청였던 중국 사업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신동빈 회장 등 그룹 수뇌부의 경영 공백 리스크가 터진 것이다. 지주사 전환 등 현안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은 ‘뉴 롯데’ 구상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해 징역 10년을 구형함에 따라 롯데그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지난 12일 롯데지주 주식회사를 공식출범했다. 첫 단추는 끼웠지만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융계열사 8곳에 대한 분할과 호텔롯데 상장, 순환출자 해결 등은 신 회장 부재에서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 롯데의 지주회사 전환은 신 회장이 ‘투명경영·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안으로 신 회장의 혐의가 인정될 경우 추진 동력이 상실될 수 밖에 없다.
한·중 관계가 해빙기로 돌아서면서 중국 사업에 대한 전략 변화도 신 회장이 결정해야 할 몫이다. 현재 롯데그룹은 롯데마트의 중국 매장 매각을 추진중인데 현지 상황에 따라 중국 사업 전략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대한 투자 역시 신 회장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신 회장을 비롯해 롯데그룹 수뇌부 대부분을 실형으로 구형함으로써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최고경영자들이 집단으로 부재한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을 일부라도 인정한다면 사실상 롯데그룹은 수뇌부 집단 부재의 초유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며 “롯데그룹 50년 사상 최대 위기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신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과거 대기업 총수들이 받았던 구형량과 비교하더라도 혐의에 비해 구형량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징역 6년과 벌금 1,100억원을 구형받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2년 징역 4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2007년 징역 6년을 구형받았다.
게다가 검찰이 신 회장의 배임으로 지목한 사건이 2000년대 중반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을 장악하던 시기에 발생했던 만큼 주도적 책임을 다툴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신 회장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검찰 역시 결심 공판에서 신 회장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 총괄회장의 잘못된 지시를 그대로 집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지만 신 총괄회장 시절 롯데그룹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됐던 시기”라며 “그룹 총수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