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고 시중은행들이 핀테크 등을 적용해 비대면을 확대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변하고 있다. 시중은행과 규모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저축은행들도 이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화두다.
윤병묵 JT친애저축은행 대표도 이 같은 고민에 싸여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트렌드에 휩쓸려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뚝심 있게 사업을 진행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6일 서울 강남구 JT친애저축은행 본점에서 만난 윤 대표는 이를 ‘네마와시식 경영’이라고 표현했다. ‘네마와시’는 나무를 옮겨심기 전에 행하는 일련의 준비작업이다. 일본에서는 분재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캐올 때 처음에는 삽을 찔러 뿌리만 끊는다. 이후 1년이 지난 뒤 나머지를 끊고 밭에 심은 후 다시 화분에 옮겨 심는 식이다. 이를 빗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전 구성원이 장시간에 걸쳐 진지하게 토론한 후 결정하는 일본 특유의 합의 문화를 ‘네마와시’라고 한다. 윤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한번 회의를 하고 즉석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는 실무진까지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일본만 해도 네마와시 문화가 있어 내부에서 여러 번 토론을 하고 최대한 오랜 기간 실무진과 이야기를 나눈 후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금융업은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해 ‘네마와시’ 경영이 필요하다는 게 윤 대표의 철학이다. 윤 대표가 ‘네마와시’ 경영에 익숙한 것도 과거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80년대 한국은행 도쿄사무소에서 일하며 일본식 경영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금융권에 휘몰아치고 있는 핀테크 열풍을 등진 것도 아니다. JT친애저축은행은 각종 수신상품 정보와 대출상품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자체 모바일 앱 ‘원더플론’을 도입했고 고객문의 유형에 따라 시나리오별로 24시간 상담할 수 있는 모바일챗봇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저축은행 업계 중 누구보다 빨리 기술을 도입하고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 발달로 소외되고 있는 금융소비자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윤 대표는 “핀테크는 스마트폰과 각종 신기술에 기반을 둔 만큼 정보에서 소외된 고객들의 경우 혜택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며 “저축은행은 ‘서민금융 안정’이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정보 비대칭으로 역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되 ‘네마와시’처럼 소외된 계층은 없는지, 서비스는 잘 도입돼 운영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개선해나간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연임에 성공해 5년째 JT친애저축은행을 이끌고 있다. JT친애저축은행은 2012년 일본 J트러스트그룹이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인수 당시 예금자산은 1조2,000억원 규모인 데 비해 대출자산은 4,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권 중에서는 일찍 중금리대출을 시도하며 대출규모를 늘려왔다. 최근에는 기업대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영업팀을 신설하고 지점 근처의 중소기업을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했다. 그 결과 JT친애저축은행은 현재 자산규모 기준으로 저축은행 가운데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윤 대표는 영업 등 경영전략에 대해 일본 측 임원과 긴밀하게 상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JT친애저축은행은 일본식 경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빠른 현지화를 위해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했던 당시 고용승계를 원하는 직원들을 전부 고용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윤 대표는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 각자 능력에 맞는 부서를 재배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해 업무 효율성을 높인 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밑바탕이 됐다”며 “과거 개인여신과 기업여신의 비율이 9대1로 쏠려 있었는데 현재 6대4 정도로 바뀌며 포트폴리오가 안정됐다”고 그동안의 성과를 설명했다.
또 반려션 오디션인 ‘JT왕왕 콘테스트’ 등을 열어 업계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등 한국식 공격경영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윤 대표는 “지난해 JT왕왕 콘테스트가 첫선을 보였을 때 업계에서는 모두 ‘왜’라는 반응이었다”라며 “저축은행과 반려견은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저는 반려견이 주는 따뜻한 힐링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저축은행의 소명인 서민을 위한 금융과 연관해 고객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1985년 국제그룹 부실사태 수습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재계 순위 7위였던 국제그룹은 부실기업 정리 대상으로 정해지며 한순간에 공중 분해됐다. 국제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국제상사의 빚 처리를 두고 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격론을 벌였다. 이 같은 부실사태의 뒷수습을 도맡은 실무자가 30대 후반의 윤 대표였다. 그는 금융감독원의 전신인 한국은행 산하 은행감독원 여신관리국에서 국제상사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국제상사를 정리할 당시 우리나라의 큰 은행이 다 개입돼 있었다”며 “내 판단이 모든 은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큰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업무를 처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직감했고 지금까지도 당시 경험을 토대로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핵심조건은 공평하고 명확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국제상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느 한 은행이 지나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설명한 윤 대표는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공부를 많이 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덕분에 직장상사로부터 기준을 잘 세우고 중심이 딱 잡혔다는 칭찬도 들었다”며 웃었다.
윤 대표는 정부의 법정 최고금리 인하정책 등 현안에 대한 업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전했다. 윤 대표는 “최고금리 인하는 금리 취약계층이 제도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 고려돼야 한다”면서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 비교했을 때 금리산정 구조가 복잡하고 금리 인하로 인한 역마진이나 수익악화는 궁극적으로 저축은행 업계 전반의 건전성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등 1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이 어려운 중·저신용자가 저축은행을 찾는 현실을 이해하고 불법 사금융에 노출되는 상황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윤 대표는 “(중·저신용자들이) 제도권 내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e is...△1953년 충북 청주 △1980년 경희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 수료 △1980년 한국은행 △1994년 동서할부금융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 △2004년 LG카드 상무 △2008년 고려신용정보 고문 △2012.10~ JT친애저축은행 대표이사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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