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관련해 고강도 협상을 예고했다. 현재 한미 FTA 협정이 미국에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며 향후 개정 협상 등을 통해 무역적자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였다.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무기 구매 등 값비싼 선물을 안기고도 미국의 양보를 하나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미 무역협정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 좋은 협상은 아니다”라며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협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한미 FTA 관련 협의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 나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통상 당국 차원에서만 오갔던 한미 FTA 개정 협상 개시도 사실상 공식화된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한미 FTA 개정 협상 개시를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10일 있을 공청회에서 산업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이 작성한 한미 FTA 개정 경제성 검토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후 23일 국회 보고절차를 거쳐 개정 협상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무역적자 해소가 제1의 지상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청구서는 역시 무기 구매였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의 무기를 주문하기로 했다”고 “무역적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한국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선 일본 방문에서도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장비를 구입하면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미국산 무기 구매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일본의 방위력을 질적·양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대량의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에 화답했다.
셰일가스 구입 등을 통해 이미 우리나라는 올해 상당한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도 했다. 대한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9월 누적 기준 원유 수입량 8억2,980만배럴 중 미국산 원유는 537만배럴로 0.64%다. 지난해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전체의 0.2% 수준에 불과했다. 10월 누적 기준 대미 무역흑자도 143억3,000만달러로 전년(197억3,000만달러) 대비 24.8% 줄었다. 우리나라 수출이 올해 들어 두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국가별로 봐도 대미 무역흑자의 감소 폭은 극적이다. 대중국 무역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했고 △아세안 40.0% △유럽연합(EU) 264.2% △베트남 61.4% △인도 43% 등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교역대상국 중 유일하게 줄었다.
문제는 무기 추가 구매 등으로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가 더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쥔 FTA 개정 요구 고삐가 느슨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 시 미국 셰일가스나 무기 구입이 양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무기 구매를 약속했는데도 FTA에 대해 신경을 쓰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은 우리가 챙긴 게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며 “추가 개방 요구나 제조업 관련 세이프가드 등 세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미 FTA 관련) 압박 수위가 낮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향후 실무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다. 통상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마지막 일정인 8일 통상장관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통상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1박2일 일정이라 빠듯하지만 양국 통상장관회담 일정을 미국 측과 조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수행단이 떠나기 전에 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거의 발언과 비교해서는 발언 수위가 낮아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자회견으로만 본다면 FTA라는 말도 직접 쓰지 않는 등 그동안의 공세와 비교해 다소 누그러졌다”며 “다만 실무협상이 남아 있고 떠날 때까지는 어떤 폭탄 발언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세종=김상훈·강광우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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