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은 최근 현대차 위기론의 진앙지나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자동차 시장의 호조가 이어지면서 2010년 54만대 수준이었던 현대차의 판매대수는 지난해 77만5,000대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체 글로벌 판매량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로 중국 다음으로 크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56만4,75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넘게 줄었다. 특히 쏘나타의 경우 10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32%나 급감했다. 시장의 흐름이 세단에서 SUV로 넘어가는 와중에도 세단 위주의 라인업을 그대로 가져가는 등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미국 시장의 전반적인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현대차가 투싼을 비롯한 SUV의 미국 생산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픽업 트럭을 출시하기로 한 것은 SUV 시장 공략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다. 투싼의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량은 8만9,713대 수준으로 쏘나타와 엘란트라, 싼타페 다음으로 많다. 특히 올해 들어 현재까지 9만1,570대가 판매돼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량을 넘어설 정도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전량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투싼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게 되면 수송비용이 줄고 경쟁 상황에 맞춰 판매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도 현대차가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 차종을 확대하기로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은 1월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5년간 총 31억달러를 미국 시장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발표 시점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이라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방향의 미국 정책을 앞두고 전략적인 결정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 관련 협상에서도 자동차 부문이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본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이 6일 일본 기업들 앞에서 “자동차를 선적하지 말고 미국에서 직접 만들라. 그리 큰 부탁도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국내 자동차 업계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라는 돌발변수가 영향을 미친 반면 미국 시장은 온전히 현대차의 전략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미국 시장의 판매량을 빨리 회복시키는 것이 현대차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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