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주 만에 4%대로 내려왔다. 금융당국의 ‘구두 압박’에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일제히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채용비리로 촉발된 금융권 사정 정국이 최고경영자(CEO) 교체 바람으로 확산되면서 관치금융도 더 노골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혼합형(5년간 고정금리 이후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주일 만에 최대 0.423%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주담대 금리 기준이 되는 KEB하나은행의 주담대 가이드 금리는 1주일 전인 지난 6일 연 3.922∼5.142%에서 이날 연 3.719∼4.719%로 하락했다. 최고금리 기준 신한과 우리·농협은행이 0.01% 하락했고 국민은행은 변동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KEB하나은행의 인하폭이 금융권에서 가장 컸다.
대출금리가 3주 만에 4%대로 하락한 데는 금리산정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가 하락한 것도 요인이지만 은행이 자체적으로 산정하는 가산금리 인하의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은 주담대 금리를 정할 때 자본조달 비용을 반영한 코픽스에다 자체 가산금리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발표하며 금융권이 과도하게 가산금리를 올리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세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들과 만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가산금리를 인상하면 사회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대출금리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경고해 시중은행들이 가산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지난주 코픽스 기준 주담대 가산금리를 1.59%에서 1.49%로 0.1%포인트 내렸다. KEB하나은행은 가산금리를 0.18∼0.40% 포인트 낮췄다. KEB하나은행이 가산금리를 조정한 것은 1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구두를 통한 시장금리 개입은 여러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을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익을 내 내부유보도 하고 해외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도 해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며 “은행이 가산금리를 부적절하게 매겨왔다면 시정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당국이 일방적으로) 개입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대규모 부실 등 부침이 심한 은행의 경우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을 쌓아 금융시장 전체의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금리 책정 등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당장은 좋은 결과를 낼지 몰라도 나중에 취약 지점에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 들어 은행을 보는 시각이 ‘어려운 서민을 상대로 이자를 더 받아 이익을 많이 냈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권 수장들이 잇따라 사법당국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을 악용해 금융당국이 ‘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주담대 금리 인상에 고삐를 조이면서 시중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시장 금리가 오르는 추세여서 (당국 개입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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