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병원에 따르면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은 지난 10월 21일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오화진씨(20·여)에게 아버지 오승택씨(55)의 오른쪽 폐 아래부분과 어머니 김해영씨(49)의 왼쪽 폐 아래부분을 떼어 이식해주는 생체 폐이식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건강하게 회복 중이다.
폐의 오른쪽은 3개, 왼쪽은 2개 조각(폐엽)으로 이뤄져 있으며 폐암 환자들 처럼 폐의 일부를 절제해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폐엽 절제는 폐암 수술 때도 흔히 시행하는 안정성이 보장된 수술이다.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생체 폐이식 성공으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돼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소아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방법이 제시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생체 폐이식의 성공은 국내에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300여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장기이식법상의 생체이식 대상에 폐를 추가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2010년까지 보고된 것만 400례를 넘는다. 생체 폐이식이 활발한 일본에선 1년, 3년, 5년 생존율이 93%, 85%, 75%로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화진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혈압이 높아져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기 어려워졌다. 결국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심장과 폐 기능이 모두 떨어져 특발성 폐고혈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든 급성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우심실이 기능을 잃는 게 주된 사망원인이다. 화진씨도 지난해 7월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이 20%에 불과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국내 이식수술 규정상 우선적으로 뇌사자의 폐를 기증 받으려면 인공호흡기를 삽입할 정도까지 폐질환이 악화돼야 한다. 국내에서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은 평균 1,456일(2016년 국립장기이식센터).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뇌사자 폐이식 대기자 68명 중 32명이 사망했다.
국내 장기이식법에 따라 생체 폐이식 진행이 어렵자 아버지 승택씨는 지난 8월 국민 신문고에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이식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도 찾아가 도움을 부탁했다.
화진씨 부모의 간절한 요청에 장기간 생체 폐이식을 준비해온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도 긴급회의를 열어 대안 모색에 나섰다.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여는 한편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현행 장기이식법상 폐가 생체이식 대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서다. 정부기관과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대한이식학회에도 보고해 생체 폐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지난달 21일 토요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수술장에 3개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화진씨를 가운데 두고 옆에는 부모가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는 물론 마취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감염내과 등의 교수진, 간호사, 심폐기사까지 총 50여명이 참여해 아버지의 오른쪽 아래 폐와 어머니의 왼쪽 아래 폐가 화진씨의 오른쪽·왼쪽 폐로 이식됐다.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화진씨는 수술 후 6일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이달 6일 일반병동으로 옮겨져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화진씨의 부모는 수술 후 6일만에 퇴원했다.
화진씨는 “수술 전 숨이 차서 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과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6일만에 의식이 돌아왔는데 마침 생일이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고 감격의 순간을 되살렸다. 아버지 승택씨는 “기약 없는 이식 대기기간 중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몰라 매일 지옥 같았는데 수술 후 천천히 숨 쉬는 연습을 하면서 다시 건강을 찾고 있는 딸을 보니 꿈만 같다. 깜깜했던 우리 가족의 앞날이 다시 밝아졌다”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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