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인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어떨까.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아 서울경제신문이 만난 경제원로들은 “숫자에 취하는 순간 위기는 또 온다”고 입을 모았다. ‘제2의 IMF’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노동개혁과 정치혁신 등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과거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고 정권과 정파를 초월하는 경제운용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며 제조업 일변도를 벗어나 성장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① ‘최후의 보루’ 재정 둑 높여라
1997년 국가채무는 60조3,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4%였다. 당시 정부는 건전재정을 바탕으로 6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환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정부의 복지확대로 올해 670조원(39.7%)인 국가채무는 오는 2060년 1경5,499조원(194.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IMF와의 협상과정에서 막후역할을 한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는 20일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재정 건전성”이라며 “이마저 깨지면 외국인들을 우리나라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 3,848억달러나 3%대 성장 같은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재정 둑을 더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② 노동·규제개혁 없인 또 충격
외환위기 이후 20년 숙제인 노동과 규제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정규직의 노동유연성을 높이고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혁신성장의 핵심은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이라고 단언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은 137개국 가운데 73위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생산성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③ 정파 초월한 경제운용 큰 그림 그려라
경제운용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조언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혁신성장·공정경제처럼 모순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굴러가는지 전체적인 틀이나 공식을 경제주체들이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큰 방향을 모르면 20년 전처럼 위기가 왔을 때 또다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원로들의 설명이다. 해외자원 개발이나 원자력발전처럼 지난 정부가 추진한 일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④ 제조업 일변도 벗어난 성장 전략 마련
금융자산은 1998년 말 1,526조원에서 지난해 말 6,999조원으로 커졌지만 경쟁력은 되레 후퇴했다. 서비스 산업도 의료와 교육·관광 분야는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서비스업은 매출 10억원당 고용효과를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가 17.3명으로 제조업(8.8명)의 두 배다. 경제원로들은 제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일자리도, 나라 경제도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⑤ P리스크 줄여야 경제 도약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외환위기 20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로 ‘P(Political·정치)리스크’를 꼽았다. 정치 분야의 개혁과 혁신 없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없다는 데는 경제원로들 모두가 동의했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박 전 총재의 말이나 국회의 중재력이 사라졌다는 박 교수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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