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1997 환란…그 후 20년’ 심포지엄 종합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와 정책의 기본 틀이 공공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관치금융, 비대한 공공 부문, 성장을 정체시키는 규제, 정권과 함께 바뀌는 정책의 불안정성 등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질병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위기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당시 관료 중심 시스템으로 비교적 빠르게 위기를 극복한 건 사실이지만 사실 외환위기에 이르게 된 것도 너무 폐쇄적인 구조 때문”이라면서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이런 정책적 패러다임은 질적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여전히 공공 부문은 비대하고 정부 관련 주체들이 너무 많아 민간이 뭔가 해보려고 해도 움직일 방법이 없다”며 “민간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극소수”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또 “늘 민간과 중소기업을 중시하지만 민간의 목소리와 중소기업의 자발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새장 속을 벗어나 시장과 민간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더 하지 않으면 미래에 어떤 결과가 와도 할 말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각종 법 제도와 규제개혁에 미온적인 정치권에도 경종을 울렸다. 최 센터장은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려면 데이터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여러 법과 규제개혁이 시급한데 국회에서는 무얼 하고 있느냐”며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을 허비하면 우리는 고스란히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도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국내법상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인 ‘우버’나 원격의료서비스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 마련과 규제개혁이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규제와 지원책이 보호를 넘어 성장이 정체된 곳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대로 가면 생계형 자영업 집중도가 높은 우리 서비스업의 특성상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물론 전체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5~10년 주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오락가락하면서 경제주체들의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기업 하기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정책적 불안정성’”이라고 소개하면서 특히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을 예로 들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 없이 무조건 소송으로 가다 보니 제도적 해결비용이 노사 양측에서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적 일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경제주체 간 대화와 합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새 정부 들어 산업계와 노동계가 같은 현상을 두고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노사를 포함한 경제주체 간 자율적 조정 시도와 정책적 불안정성 해소, 양극화된 것들을 연계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센터장도 “지금 우리 경제사회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며 “새장 속에서 자기 이익만 찾는 폐쇄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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