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대한통운 인수로 재계 7위까지 올라섰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9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계열사들을 줄줄이 매각하고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 돌입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팔려갔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002990)·금호타이어(073240) 등 주요 4개 계열사는 워크아웃 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등 주요 계열사를 되찾았다. 그룹 재건을 위해 남은 것은 금호타이어뿐이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28일 “금호타이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인수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대신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항공과 운송·건설 중심으로 재편해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8년간 이어온 그룹 재건의 꿈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박 회장은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금호홀딩스-금호고속 합병 마무리와 그룹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어 “금호타이어는 완전히 포기했고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감기에 걸렸다며 잔뜩 잠긴 목소리와 침통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입장을 밝혔다. 금호타이어를 총 22번이나 언급하며 ‘인수에 나서지 않겠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박 회장에게 금호타이어는 남다른 기업이다. 금호그룹 입사를 금호타이어로 했다. 그룹이 성장하는 주춧돌 역할을 한 것이 금호타이어였다. 박 회장은 “올해로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지 51년이 됐고 굉장히 애착이 가고 애정이 누구보다 컸다”며 “하지만 2013년 말 워크아웃 졸업 후 부덕한 탓에 2015년부터 실적이 악화됐고 책임감을 느껴 채권단에 경영권과 우선매수권 포기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호타이어가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돼 좋은 회사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그룹에서 할 수 있다면 지원을 해서라도 금호타이어가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삼구 회장이 공을 들이던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한 배경에는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악화가 있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재인수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활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금호그룹이 금호고속 자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아시아나IDT·아시아나에어포트·아시아나세이버 3개사가 출자와 담보를 제공해 그룹 전반의 신용등급이 악화됐던 것처럼 아시아나항공이 또 한번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BBB-’에 ‘부정적’ 전망으로 투자적격 등급 중 최하 수준이다.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면 투자금 조기 상환 등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은 10월 600억원 회사채 수요예측에 30억원의 유효수요 확보에 그치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자율관리 대상’에서 ‘심층관리 대상’으로 재분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저가항공사(LCC)들의 성장으로 항공 시장 수익성이 예전 같지 않은 점도 악재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를 포기하는 대신 주력인 아시아나항공, 금호터미널(운송), 금호건설 중심의 3각 체제로 그룹을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력 계열사의 부채 비율을 낮추고 건강한 회사로 만들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을 활용해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엇갈렸다”며 “이제 금호타이어 인수를 접은 만큼 아시아나항공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 턴어라운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부채 비율이 높다는 지적에는 “회계 기준이 달라지면서 숫자가 바뀐 것일 뿐 회사 근본 경쟁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제 금호홀딩스가 합병을 완료해 진짜 새로운 금호아시아나가 국민경제·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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