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등 슈퍼카 시장은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다. “기존 고객이 재구매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게 이들 슈퍼카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으로 새로 들어오는 고객들은 거의 없다. 3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차량 가격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객들조차 달리고 싶은 욕구를 접게 만든다. 하지만 한 단계만 눈을 낮추면 선택지가 훨씬 다양해진다. ‘부릉~부릉~ ’귀를 때리는 배기음을 따라 눈길을 돌리면 십중 팔구는 슈퍼카가 아닌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고성능 버전이다.
◇성장 가도 달리는 고성능차 시장= 고성능차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시장도 규정하기 나름이다.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브랜드 내에서 별도로 운영되는 고성능 모델. 메르세데스-벤츠의 AMG와 BMW의 M, 아우디의 S, RS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포르쉐와 마세라티 등 슈퍼카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모든 모델이 고성능차의 영역에 속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통계에 잡히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포르쉐의 고성능차는 지난해 총 4,937대가 판매됐다. 전체 수입차 판매량이 22만5,000여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약 2%의 비중이다. 하지만 성장세만 놓고 보면 전체 시장을 앞선다. 2011년 1,181대였던 고성능차 판매량은 매년 30~50%씩 증가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의 차량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살짝 까치발을 들면 고성능 버전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수입차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차별화를 추구하는 고객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외관 다른 심장…고성능차의 매력=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더 뉴 메르세데스-AMG S 63 4MATIC+ Long’을 출시했다. 차량의 외관은 지난 9월 출시한 신형 S클래스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성능은 비교가 안 된다. AMG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을 탑재한 AMG S63은 정지상태에서 3.5초면 시속 100㎞에 도달한다. 슈퍼카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수입 중형 세단인 BMW 530i의 최고출력은 252마력, 최대토크는 35.7㎏·m이다. 같은 외관의 M5는 560마력, 69.4㎏·m으로 두 배 이상 힘이 좋다. SUV 역시 고성능 버전이 인기다. 포르쉐의 10월 누적 판매량은 1,13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58.9% 늘었다. 대표 SUV인 카이엔이 900대 가까이 팔리며 포르쉐의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넓어지는 선택지, 내년 아우디도 가세=디젤 게이트의 영향으로 1년 넘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아우디도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차량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모든 모델의 판매를 중단했던 침묵을 깨고 지난달 출시한 첫 차량이 고성능 스포츠카 ‘더 뉴 아우디 R8 V10 플러스 쿠페’다. 아우디는 일반 세단형 고성능 모델인 S와 RS 등도 내년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BMW는 뉴 M5와 뉴 M4CS, 뉴 M2 등 내년 3종의 신형 M모델을 국내 시장에 들여올 계획이다. 포르쉐 역시 내년 상반기 신형 카이엔 터보를 선보인다. 최고출력은 550마력, 제로백은 3.9초로 현재 판매되고 있는 카이엔 GTS보다 110마력 이상 힘이 세고 제로백도 1초 이상 낮다. 현대차도 고성능 모델 ‘N’을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선봉은 내년 1월 출시할 예정인 신형 벨로스터로 고성능 버전의 출시일은 5월로 예정돼 있다. 현대차는 폭스바겐의 골프와 BMW의 1시리즈, 벤츠의 A클래스 등과 경쟁한다는 목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고성능차 버전이 대형차 위주로 꾸려졌다면 최근에는 소형 고성능차를 찾은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고성능차 시장의 전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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