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관계 당국이 한발 더 나아간 법적 규제에 방점을 두며 사회적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이를 위해 가상화폐 대책의 주무부처는 금융위원회에서 법무부로 변경됐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육성책은커녕 일관된 정책 방향도 내놓지 못해 정부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4일 금융위와 법무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범정부 합동 ‘가상통화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가 예정 없이 개최됐다. 이날 회의는 법무부의 강력한 요청하에 급하게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TF가 갑자기 진행된 것은 거래량 급증과 거래소 난립 등으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상화폐 문제에 대해 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강경 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거래량이 코스닥을 능가하는 등 가상통화(거래)가 투기화되고 있다”면서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현상이나 병리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관계부처에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이전에도 범정부 TF는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금융위·법무부·국세청 등 관계 당국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바 있다. 당시 TF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의 주재로 9월에 두 번 개최됐다. 9월29일 열린 2차 회의를 통해 금융위는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유사수신행위 규제를 명확히 하는 ‘유사수신행위규제법 개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같은 정부 입법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이날 오후 국회에서는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3차 회의에서 달라진 것은 주무부처가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입법 방향도 상당 부분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부처 내에 법무실장·정책기획단 등이 참여하는 TF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범정부 합동 TF 3차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금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거래소 인가 등 가상화폐 관련 주무부처가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넘어가게 됐다”면서 “금융의 영역이 아닌데 유사수신법 개정안 등 금융위 소관 법률로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금융위의 기존 입법안이 폐기되는 방안까지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측에서는 유사수신행위라는 개념이 법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가상통화 거래소는 투자자들에게 원금 지급을 약정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곳이 아니라 가상화폐라는 상품을 판매·중개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상화폐 관련 정책 방향을 놓고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금융청의 주도하에 거래소 인가제 등 가상화폐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육성책은커녕 정책 방향도 제대로 내놓지 못해 불확실성만 높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정부는 이날 TF 회의를 통해 가상화폐를 ‘화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법무부 측은 “가상화폐는 본질적으로 내재된 가치가 없고 그 가치와 강제통용을 보증해주는 국가나 기관이 없어 금융이나 화폐로 볼 수 없다”면서 “가상통화의 현재 거래 실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선량한 국민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업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법무부 측은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화폐의 안전한 거래를 보증할 뿐 가상화폐 자체의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면서 “현재 거래되는 가상화폐는 현금으로 지급이 보증되지 않고 금액의 표시도 없어 합법적인 전자화폐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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