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정년을 보장하기 때문에 한 번 늘린 공무원 수는 다시 줄어들지 않는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현금지원 등을 더 해준다는데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거꾸로 혜택을 다시 빼앗아간다면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다음 선거에서 질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복지를 축소할 정부는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일자리·복지에만 80조원 이상을 추가로 쏟아붓는 등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이룰 계획이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는 나도 줄일 수 없는 복지예산이 다음 정권이나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과실은 따먹고 미래세대에 큰 짐만 떠넘기는 꼴”이라면서 “내년 예산부터라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여야 합의를 거쳐 새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과제인 △공무원 증원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등이 일부 계획 수정을 통해 추진된다.
여야가 가장 치열하게 다툰 공무원 인력 증원 규모는 9,475명으로 애초 정부안(1만2,221명)보다 22%가량 줄었다. 정부는 앞서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2,575명을 충원했다. 내년 증감분까지 더하면 모두 1만2,050명으로 관련 예산은 3,000억원가량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들어가는 예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서막일 뿐이다. 정부는 올해 1만2,000명을 시작으로 내년 약 3만명, 오는 2019~2022년 13만여명 등 모두 17만4,00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추가 채용한 2,575명의 5년간 인건비와 관련 경비, 사회보험료, 연금 부담금을 계산한 결과 2018~2022년 5년간 5,684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무원의 평균 재직기간(25년)을 고려해 앞으로 30년 동안 추가로 들어갈 예산을 산출하면 327조8,000억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정)까지 급증한다. 정부는 현재 공무원 증원에 따른 정확한 추가 재정 소요를 계산 중이지만 최소 200조원 이상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일자리안정자금)에는 3조원의 재정을 쏟아붓는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6.4% 올라 영세사업자 경영난과 대량해고가 우려되자 정부가 인건비 상승분 일부(1인당 13만원)를 지원하는 것인데 세금으로 민간기업 인건비를 주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애초 2018년에만 편성한 뒤 2019년에는 방침을 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여야 협의에서 2019년에도 내년과 비슷한 규모로 시행한다고 한 만큼 3조원의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린다는 게 정부 목표인 만큼 일자리안정자금 소요는 늘면 늘어나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근로장려세제(EITC)를 활성화하는 식의 간접지원으로 사업을 전환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규모의 재정지출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문재인케어’ 역시 내년에는 3조7,000억원이 더 들어간다. 기존에 누적된 건강보험 적립금을 쓰기 때문에 내년 예산안과는 별개지만 준조세인 건보료는 사실상 세금으로 여긴다. 보장성 강화 항목은 시간을 두고 확대돼 적립금 추가 지출 규모는 매년 늘어 2017~2022년 무려 30조6,000억원을 더 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지출도 상당하다. 현재 월 20만6,050원이지만 2018년 4월 25만원, 2021년 4월 30만원으로 인상되고 수급자도 올해 475만명에서 내년 516만6,000명으로 증가한다. 시행 시기가 내년 9월로 늦춰지면서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8,000억원 정도 더 들지만 5년간 수급자가 늘고 지급액이 늘면서 21조8,000억원의 지출이 예상된다.
내년 9월부터 시행하는 아동수당의 경우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는 등 보완조치로 계획(1조1,000억원)의 절반 수준인 6,800억원이 필요하지만 향후 5년간 필요한 예산만 8조7,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처럼 복지사업이 급증하면서 전체 정부지출에서 차지하는 보건·복지·고용 부문 지출 비중은 내년 처음으로 34%를 돌파한 34.1%를 기록하고 2021년에는 37.6%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출은 늘렸지만 세금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 정부의 올해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2조3,000억원, 소득세 인상으로 1조1,000억원 등 5조2,000억원가량 늘 것으로 보인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늘린다고 하지만 실제 확대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재정지출 확대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해 9월까지 18조원이 더 걷힌 풍족한 세수는 이런 정부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대외 리스크와 경기 변동에 따라 장기적으로 세수가 줄어들 수 있는데다 복지·고용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의 복지 확대가 다음 정권이나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 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 정원 확대에 따른 중장기 재정 소요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으면서 실제 지출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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