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투쟁은 불법 촉탁직의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투쟁이다.”
지난 5일 울산광역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전 조합원 보고대회에서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005380) 지부장은 “단순히 이번 임단협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 내부 적폐인 불법 촉탁직과 불법 파견 해결은 시대적 사명이고 대공장 노조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조합원 중 상당수는 갸우뚱했다. 정규직 임금을 더 달라고 하는 투쟁에서 뜬금없이 촉탁계약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집행부는 향후 10년 내 2만명이 정년퇴직을 하는데 회사가 그 빈자리를 촉탁직으로 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실상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이다. 겉으로는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라고 포장하지만 속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대의원들조차 “촉탁직 이슈는 자칫 지부의 투쟁에 비정규직을 끌어들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에 발맞추는 모습으로 사측을 압박해야 한다”는 지도부의 주장이 관철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노조 간 갈등 못지않게 노조 내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투쟁 강도가 세지면서 표면적으로는 파업이라는 단일행동으로 단결력을 과시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 최근에는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1,000명이 넘는 선거인명부 누락 사태마저 발생했다.
◇계파만 7개, 실리보다는 선명성 경쟁에만 집중=현대차 노조가 국내 대표 강성노조가 된 이면에는 노조 내 세력들 간 경쟁이 존재한다. 현재 현대차 노조 내부에만 총 7개의 계파가 있다. 이 중 금속연대와 금속 민투위, 민주현장 3곳이 강성으로 꼽히고 현민노와 들불, 소통과 연대는 중도 성향이다.
여기에 2013년 이념을 벗어던지고 실리를 중시하자는 ‘현장노동자’ 조직이 설립되며 7개 계파가 지부장 선거 때마다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강성·중도·실리 등 성향과 관계없이 선거 때만 되면 강성 일변도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전임 노조보다 더 큰 몫을 회사로부터 챙겨오겠다”는 주장이 난무하면서 재차 투쟁 강도가 올라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당장 올해 현대차 지부장으로 선출된 하부영씨는 중도 성향의 들불 소속이다. 그러나 현 집행부의 투쟁 행태를 보면 강성 중에서도 강성으로 꼽힌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합원이 5만명을 넘어서는 현대차 노조는 전체 노동계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면서 “노조위원장 선거 때마다 각 계파가 경쟁을 하고 결국은 사측과 누가 더 각을 세우느냐에 따라 당선 여부가 결정되는 모습마저 노동계의 속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인명부 누락, 고의 여부 떠나 치명적 사건 될 듯=최근에는 계파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노조의 존립 기반인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현대차 지부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울산본부장 선거를 위한 선거인명부 작성 과정에서 1,000명이 넘는 조합원을 누락했다. 단순 실수라 하더라도 선거의 정당성에 타격이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 큰 문제는 선거인명부 누락이 ‘특정 계파의 의도적인 행태 아니냐’는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인명부에서 누락된 조합원 대부분이 소재공장 소속이다. 소재공장 조합원 상당수는 민주현장 계파로, 올해 지부장 선거에서 하부영 현 지부장과 끝까지 경쟁한 한 후보도 민주현장 대표다. 노조 내부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커지면서 계파 간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급기야 민주현장의 반대 계파인 민투위는 “적군과 아군도 구분 못 하냐”면서 정작 피해자인 민주현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집단에, 가해자의 단순 실수를 마치 의도가 있는 양 덧씌우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거에서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생명은 끝난 것”이라면서 “어떤 경유에서든지 이번 선거인명부 누락 사건은 현대차 노조의 존립 근거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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