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육아기에 있는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1시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이달 말 저출산 대책 때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원회가 추진하는 방안은 구체적으로 ‘9 to 5(오전9시 출근, 오후5시 퇴근)’나 ‘10 to 6’ 둘 중 하나를 선택해 1년간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임금 삭감이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기업은 임금 감소분을 자체적으로 보전하도록 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김 부위원장은 “대기업의 경우 자발적으로 일·가정양립을 지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경영 여력도 되는 만큼 재정 지원은 중소기업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임금 하락 없이 전 직원의 근로시간을 1시간씩 줄이겠다고 밝혔고 롯데 역시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면서 임금 보전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 9세 이하 아동 인구가 약 448만명임을 감안하면 근로시간 단축제 적용 대상은 4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근로자 스스로 원하지 않은 사람까지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지는 않을 방침이어서 실제 시행 대상은 이보다 적을 수 있다.
위원회가 이 같은 저출산 대책을 들고 나온 것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근로시간 관행이 저출산을 키우는 주범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많은 부모들이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만성 과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것조차 버거워한다”며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전쟁 같은데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들겠냐”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12세 아이를 둔 ‘워킹맘’ 중 오후6시 전까지 자녀를 직접 돌보는 사람은 20%도 안 된다. 위원회가 실시한 시민단체와의 정책간담회에서도 “저출산 정책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위원회는 비슷한 맥락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만 8세 자녀를 둔 부모는 본인이 회사에 신청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인식도가 낮고 회사 눈치에 신청을 꺼리는 탓에 지난해 이 제도를 시행한 사업체는 10.3%에 그쳤다. 1년 범위 안에서 육아휴직과 연계해서 써야 하는 불편함도 제도 확산을 막는 요소다. 가령 육아휴직을 10개월 사용한 사람은 근로시간 단축은 2개월밖에 못 쓴다. 임금 보전도 통상임금의 80% 수준에 그친다.
위원회가 임금 삭감 없는 1시간 근로시간 단축 의무화라는 강력한 정책을 꺼낸 이유가 여기 있다. 기존에 근로자가 신청해서 쓰는 제도도 그대로 유지해 원하는 근로자는 의무 단축 1시간에 더해 추가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 관행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접근은 맞는 방향이며 이를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감한다”면서도 “야근이 많은 사람은 1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점, 의무 근로시간 단축을 거부하는 근로자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제도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임금 보전은 둘째치고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직원이 많아졌을 때 업무 차질이 부담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임금 보전을 지원하면 재정 부담이 크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세부적으로 잘 가다듬어 가겠지만 제도 자체는 꼭 시행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을 마련 시 육아기 근로시간 의무 단축 외에 남성의 일·가정양립제도 사용 활성화, 육아휴직 사각지대 해소 등에도 중점을 두기로 했다. 지난 정부 위원회 때와 같은 백화점식 대책은 피하고 육아기 부모의 일 부담 완화, 보육 지원 강화 등에 정책 지원을 집중할 방침이다. 대책은 이달 말 대통령 주재로 위원회 회의를 열어 발표될 예정이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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