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 16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임 위원장은 “17~18일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재조정이 실패할 경우 대우조선해양을 신속히 프리패키지드(P)플랜(초단기법정관리)에 넣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 후 청산되면 57조원의 손실과 4만 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다. 만약 채권단이 빚을 주식으로 전환해 한번 더 기회를 준다면 투입국민 혈세를 담보로 2조9,000억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2015년 10월 지원한 금액(4조2,000억원)을 포함해 2년간 7조1,000억원을 쏟아붓는 조치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받았다.
이 같은 결정에는 대우조선 노조의 힘도 컸다. 노조는 지난 3월 채권단에 회사가 뼈를 깎는 자구계획을 이행하는 동안 파업을 자제하며 경영 정상화에 동참하겠다는 확약서를 썼다. 채권단의 요구도 있었지만 노조 스스로 최근 2년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것에 대한 자성이었다.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1년도 되지 않아 돌변, “임금 3.8%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다.
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대우조선해양은 약 200억원을 인건비로 추가 지출해야 한다. 노조는 회사가 1조5,631억원 규모(3·4분기 누적 기준)의 이익을 냈으니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를 보는 대중의 시각은 싸늘하다.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쌓아올린 당기순이익은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올 1조5,631억원의 당기순이익 가운데 채무조정이익이 1조3,877억원에 달한다. 대우조선의 이익은 사실 채권자들이 받을 빚을 안 받은데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채권은행들은 4월 채무재조정을 약속하며 약 7,000억원의 80%를 출자전환하고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1조6,000억원 100%를 출자했다. 당연히 대우조선해양은 갚아야 될 돈을 안 갚았으니 이익으로 산정됐다. 조 단위의 이익은 실제 현금이 아닌 장부상의 이익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분기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6,47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활동으로 지출한 돈이 벌어들인 돈보다 6,500억원 가량 많다는 얘기다. 이는 공사진행률에 따라 매출로 잡힌 영업이익이 실제 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대형 선박프로젝트의 인도가 지연되며 2014년 이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매년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대우조선의 남은 일감(수주잔량)은 238억 달러(11월 기준)로 지난해에 비해 30%이상 쪼그라든 상태다. 특히 경쟁 조선사들도 수주에 혈안이 된 탓에 수주 선박의 척당 이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만큼 저가수주에 시달리고 있다. 서너 척 수주해 설계 비용 등을 아껴야 겨우 건조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이 인상되면 부담은 결국 협력업체에 전가될 수도 있다. 업황 한파에 올해 대우조선해양의 1차 하청업체는 10%나 줄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당장 내년 일감절벽을 앞두고 있는 만큼 수 조원대 지원을 받았을 때의 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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