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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삼성전자 감사인 선정...현실화하는 '연금사회주의'

금융위, 스튜어드십 코드 준수 기관에 감사인 신청권

회계개혁 TF 논의 거쳐 외부감사법 시행령에 담기로

최소 275곳 대상...기업 "연기금 경영간섭 심화" 우려





금융위원회가 수탁자 책임(스튜어드십 코드)을 준수한 기관투자가에 투자 기업의 감사인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한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기업을 감사할 회계법인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된다. 운용자산 규모가 600조원인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 275개(9월 현재) 업체에 국민연금이 감사인 신청권을 행사하는 길이 열리는 셈이기도 하다. 경영 참여를 넘어 간섭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지금은 기금운용이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아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가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엇나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만큼 연기금의 경영 관련 권한 확대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19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스튜어드십 코드와 감사인 지정제를 연계하는 내용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시행령에 명시하기로 하고 이를 상장사와 회계 업계 관계자가 포함된 회계개혁 태스크포스(TF)와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모든 기관투자가에 감사인 신청권을 인정할지 아니면 준수 정도가 우수한 기관투자가로 제한할지, 준수 정도는 어떻게 평가할지 등 구체적인 사항은 TF 논의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11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외국 기관투자가 대상 설명회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투자가에 외부감사인 지정 신청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금융위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 주주’의 책임을 강화해 투명한 기업 경영을 이끈다는 취지인 만큼 감사인 신청 자격 요건으로 알맞다고 판단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른바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정책으로 부각된 만큼 상장사나 회계 업계 등 이해 관계자의 거부감을 덜 수 있다고도 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 성공의 전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관투자가의 권한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배당 확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또는 운용의 전문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며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과 주요 금융지주의 주주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사회적 합의까지 요구된다”고 말했다. 주주 간 이해관계 상충 발생, 의안 분석서비스 활용 미비 등 연기금이 독립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하기 위한 또 다른 요건도 선결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 관계자인 상장사와 회계 업계 역시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떤 전제 조건이 걸리든 기관투자가의 경영 간섭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다수 상장사의 최대주주라지만 다른 연기금과 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규모가 크지 않은 기관투자가까지 감사인 신청 권한을 가져도 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지금은 9월 외부감사법 전면개정으로 자유수임제에서 ‘국가지정제’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만큼 기업들은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며 “숨을 돌릴 틈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강제성을 띠지 않는 연성 규범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법 규정에 명문화 할 경우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계 업계는 금융당국 이외의 주체가 끼어드는 것은 회계 투명성 제고에 부정적이라고 주장한다. 회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한다’는 대원칙에 자꾸 예외가 허용되는 것은 9월 전면개정된 외부감사법의 정신에도 맞지 않다”며 “신중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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