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관련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8월 한미 FTA 1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의약 산업과 관련해 △미국의 글로벌 혁신신약이 가격을 제대로 우대 받을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할 것 △의약품 ‘독립적 검토 절차’를 실효화할 것 등을 한국에 요구했다. 두 가지 요구 모두 미국 의약품의 한국 내 공급 가격을 올리자는 속내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 국내 보건의료에 크게 기여한 신약 등에 대체약보다 10% 가격을 우대하고 심사 기간도 단축한다는 ‘글로벌 혁신신약 우대 정책’을 발표했다.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 받은 경우나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실시한 경우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등 외국 제약사는 이런 조건이 한국 제약사에만 유리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외국 제약사를 감안해 신약의 사회적 기여도를 본다는 조항도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USTR이 공식적으로 FTA 협상 테이블에 이 주제를 올리면서 제도 개선 압박 강도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치료재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 가격 결정 등에 이의가 있을 때 업체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독립적 검토 절차’에도 불만을 제기했다. 이 제도는 미국이 한미 FTA 체결 때 요구해 2012년부터 시행한 것으로 당시 국내에서는 ‘외국 제약사의 압박으로 약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정작 제도 시행 이후 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한 건도 없다. 독립적 검토 절차를 통해 미국 의약품 공급 가격을 올리려던 미국의 의도가 전혀 실현되지 못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FTA 재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신약의 최저가 보장 같은 더 센 요구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복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2007년 한미FTA 체결 협의 당시 요구했던 신약의 최저가 보장이나 물가·약가 연동 조정 등 카드까지 다시 꺼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방안은 우리 약가 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것들이다.
정부 관계자는 “8월에 제기된 두 가지 요구는 우리의 약가 결정 구조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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