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준(사진) 해시드 대표의 서울 논현동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하루에만 10여 개가 넘는 신규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백서(White Paper)가 날아든다. 국내외 블록체인 업체들이 해시드에서 투자를 받겠다고 보낸 자료다. 해시드는 지난 2월 김 대표를 비롯한 5명의 매니저가 투자해 만든 블록체인 전문 투자육성업체다. 김 대표는 연초부터 전 세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그는 지금 국내의 블록체인 산업과 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울경제신문은 지난 13일 서울 논현동 해시드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현재 국내의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버블이 맞고 투기 양상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투기일 뿐일까요. 오히려 지금 한국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세계 선두에 설 기회에 서 있습니다.”
김 대표는 “IT 버블 당시를 보라”고 말한다. 그는 “2000년초 IT 버블 때 이를 계기로 지금의 구글 같은 업체가 탄생했다”며 “자금이 모이는 곳에 사업기회가 생기고 창업가가 몰려 혁신 기업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투자에 시중 자금이 몰리는 지금 국내 상황은 오히려 블록체인 산업 성장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과정이라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이어 “지금껏 세계적 IT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방한하는 경우가 있었느냐”며 “일부러 초대해도 잘 응하지 않는데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시장이 활발하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의 리더들이 자비를 들여서라도 한국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업계 리더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국내 예비 창업자에게 영감을 주고, 여기에 시장 자금이 합쳐져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며 “투자에 대한 관심이 개발과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기회가 지금 한국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암호화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블록체인 기술은 좋지만, 암호화폐는 위험하다’는 이분법으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만들어 낼 가치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분야를 공부하면 할수록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터넷이 기술의 영역이었다면 블록체인은 기술을 넘어서 금융과 경제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에다 ‘코인’ 또는 ‘토큰’으로 불리는 암호화폐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토큰이란 권리관계를 디지털화한 일종의 징표라고 봐요. 그리고 이를 연예계에 적용 시켜 봅시다. 기획사가 연예인을 초기에 키울 때 투자비가 많이 들죠. 게다가 연예인이 성공하기까지 초기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정작 팬들이 연예인의 성공에 기여한 인센티브는 없습니다. 만약 기획사가 연예인 화폐를 발행해 초기 팬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초기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코인을 직접 살 수도 있고, 추후 연예인의 광고 수익 등을 코인을 통해 분배 받아 보상을 받게 됩니다. 기획사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가능성을 검증받고 투자자금을 모을 수 있게 됩니다.”
김 대표는 “이 개념은 모든 산업에 적용할 수 있고,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품, 부동산 등에 일부 투자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토큰을 살 수도 있다”며 “결국 토큰 이코노미에서는 그 생태계에 참여하는 사람이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어 몇몇 주주만이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현재 주식회사 시스템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개념”이라고 역설했다.
이미 실리콘밸리 등 해외에서는 이 같은 블록체인 산업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김 대표는 “두 달 전 페이스북 본사에 갔을 때 사내에서 블록체인에 투자하는 그룹에 1,400여 명이 속해있었다”며 “이 같은 관심은 자연스럽게 실리콘 밸리 인재들이 블록체인 비즈니스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인재와 자본이 블록체인 분야에 막 뛰어들기 시작하는 지금 과연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거래를 원칙적으로 막고 최초코인발행(ICO)을 금지한 정부 조치는 김 대표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블록체인은 전 세계에서 참여하는 시스템이고 이미 미국은 선물거래를 시작했다”며 “우리나라는 ICO 금지 같은 조치로 세계 흐름에 역주행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만약 한국만 시장을 닫는다면 이는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 결국 우리나라만 세계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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