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 진량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의 A 대표는 얼마 전부터 사장 집무실이 아니라 공장으로 출근한다. 부친의 공장을 물려받아 연매출 30억원 규모로 키웠지만 최근 현대차 납품 물량이 줄어든데다 내년 1월부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게 되자 직원 25명 중 10명을 내보냈다. 그러다 보니 납기를 맞춰야 할 때는 대표이사는 물론 재무담당 상무 등 임원들도 공장에 내려와 라인 곳곳에서 일을 나눠 맡는다.
섬유업체인 B사는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몇 년 전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동료 사장들은 이미 초기 투자비를 회수했다며 빨리 오라고 권한다”면서 “가능하면 국내에서 버티고 싶었지만 살인적인 인건비 인상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인들의 등을 떠밀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정부가 손 놓고 있다가 우리 같은 중소기업인들만 피해를 보는 거 아니냐”면서 “이제라도 영세기업만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2018년 새해를 앞두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재래시장의 한숨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규모가 영세할수록, 경기불황의 골이 깊은 업종일수록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환경 변화에 대한 우려는 절박함으로 바뀌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산업단지에서 만난 일부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 예고까지 겹치자 감원하거나 신규 채용을 중단하는 분위기다.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 역시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종로3가역 인근의 한 금은방 업주는 “공장하고 도매를 같이 하는 사장님 중에서 도매직원을 내보내고 가족을 데려다 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젊은 30대 부부는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에 아르바이트 1~2명을 고용했던 것을 포기하고 12시간씩 교대근무로 바꿨다. 서울 목3동시장의 문성기 상인회장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상인들의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상인들끼리 모여 정부지원금을 수령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보완장치 하나 없이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산업계 전반적으로 엄청난 충격파를 안길 것”이라며 “업종별로 임금 문제가 쟁점화되는 곳이 있고 인력 문제가 쟁점화되는 곳이 있는데 이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응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민정·박해욱·백주연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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