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이 26일 3개 계열사를 합병해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를 확 줄이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태광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에 합병되는 티시스는 지난해 매출 2,156억원으로 태광그룹에서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다. 합병 주체인 한국도서보급은 지난해 영업수익이 72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그룹 내 위상은 매출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한국도서보급은 이 전 회장이 지분의 51%, 아들 현준씨가 49%를 보유했고 티시스 역시 학교법인 일주학원(0.97%)을 제외하고 오너 일가가 지분을 모두 보유했다. 특히 티시스는 주력인 태광산업의 지분 11.22%를 보유한 2대 주주이며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의 최대주주(17.74%)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이들 회사의 매출액 중 계열사와 거래한 비중이 65~85%에 달한다. 티시스의 경우 지난해 계열사 매출이 1,83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85%를 차지했으며 한국도서보급 역시 65%가 넘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는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의 정점에 이들 회사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사실상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티시스가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된 뒤 투자회사가 한국도서보급과 합병되고 사업회사는 존속하게 되지만 이 전 회장이 사업회사 지분을 모두 무상증여하기로 함에 따라 직접적인 소유권은 내려놓게 된다. 이 전 회장이 합병을 완료하면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는 기존 세광패션·메르벵·에스티임·동림건설·서한물산·티시스·한국도서보급 등 7개에서 한국도서보급 한 곳만 남게 된다. 오너 일가 소유 기업 자체가 한 곳밖에 남지 않은데다 한국도서보급의 경우 지주회사 역할에 국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이 전 회장이 약속한 1,000억원 규모의 티시스 사업회사 지분에 대한 무상 증여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 측은 아직 무상 증여의 대상이나 방법 등은 확정되지 않았고 내년 합병 전까지 법적 검토 등을 통해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증여 상대방으로 결국 공익재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현재 태광그룹에는 일주세화학원·일주학술문화재단·세화예술문화재단 등이 있다. 그룹 관계자는 “아직 증여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그룹 내 재단에 증여하는 것도 이 전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을 깎아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태광그룹의 지주사 전환과 관련한 밑그림을 제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 태광그룹은 흥국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제외하면 크게 ‘이 전 회장-티시스-태광산업’으로 이어지는 구조와 ‘이 전 회장-한국도서보급-대한화섬’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로 나뉜다. 그리고 지난 10월 티시스가 자회사인 동림건설·에스티임·서한물산을 흡수합병할 때만 해도 티시스가 지주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흡수합병으로 지주사 격인 한국도서보급을 정점으로 그 아래 자회사로 티시스·태광산업·대한화섬을 두는 지배구조로 재편되게 됐다. 합병 과정에서 새롭게 생긴 순환출자구조를 해결하고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방안만 마련되면 태광그룹의 지주사 전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도서보급이 현 규모로는 지주사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명을 변경하는 등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며 “태광그룹의 지주회사 전환도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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